매일신문

[매일춘추] 흑묘백묘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 청문 대상자들의 여러 가지 흠결이 나오자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느냐' '큰일을 할 사람들에게 작은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흠집 내기지'라면서 청문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일만 잘하면 되지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서 뭐 하겠느냐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모로 간다는 것은 옆으로 간다는 의미다. 똑바로 가든 옆으로 가든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수단, 방법,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중심주의가 함축되어 있다. 아마 이 속담은 청문회를 바라보면서 일만 잘하면 되지 그까짓 흠결이 뭐가 문제냐는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친근감을 주는 용어다. 오늘날 그들의 경제적 부의 성취는 이 흑묘백묘의 논리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약 30여 년 전 중국 경제 성장의 논리는 바로 이 흑묘백묘였다. 덩샤오핑이 즐겨 사용했던 이 말은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과도 닮은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이같은 흑묘백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을 이룩하고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틀 내에서 인민 삶의 향상을 위해 진정한 진보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급한 성과주의와 자기중심주의, 정치적 논리에 함몰된 가치관을 배격했다.

그러니까 흑묘백묘의 논리는 목표가 분명하고 방법과 수단이 존재하고 도덕성까지도 갖추고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결과중심주의와는 다르다. 청문회에 등장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그동안 중요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들이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통해 치부하고 권력도 개인적으로 향유했다.

만약 이들이 청문회 과정을 통과해 임명된다면 과거의 모든 불법은 덮어지고 여기다가 다시 엄청난 권력과 명예를 소유하게 된다. 이럴 경우 굳이 학교에서 사회적 룰이나 법 준수를 강조할 이유가 없다. 학생들에게 그저 세상 돌아가는 대로 너희들끼리 알아서 살아가라는 말 한마디로 족하다.

그래도 청문회 공직 후보자들 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일부가 자진사퇴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번 진통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문장순<경북대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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