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정희가 총탄에 쓰러진 진짜 이유는…?

암살의 역사/스티븐 파리시언 지음/김형진·주순애 옮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쏜 총탄이 육영수 여사를 쓰러뜨렸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행사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쏜 총탄이 육영수 여사를 쓰러뜨렸다.

▨암살의 역사/스티븐 파리시언 지음/김형진·주순애 옮김/메이히스토리 펴냄

'1979년 10월 26일, 한국 대통령 박정희가 최측근 인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된 사건은 아마도 20세기에 아시아에서 일어난 많은 암살 사건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며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박정희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영광의 순간까지는 미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417쪽-

정치적 암살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언제나 역사의 일부였다. '암살'이라는 용어야 12세기에 들어와서 일반적으로 사용됐지만 암살의 범주에 들 수 있는 동기, 야심, 목표들은 인류가 처음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두머리를 선출했을 때부터 줄곧 존재했다. 이 책은 세계 역사 속 암살사건 중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40건을 뽑아 사건이 일어난 배경, 혹은 암살이 실패했더라면 어땠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가 말하는 암살은 정치적 암살에 국한된다. 존 레논처럼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이거나 문화계 인사들, 혹은 수감 중이던 인물을 처형하는 경우나 청부 살인은 배제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체로 정치가의 암살은 그가 가장 큰 영향력이 있을 때 발생하기 때문에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모든 암살 시도가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암살 통계를 다룬 벤자민 존스와 벤자빈 올켄의 하버드 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1875년과 2004년 사이 298건의 암살이 시도됐고 그 중 59건이 성공했다. 예컨대 히틀러는 1939년 뮌헨 비어홀을 떠난 지 13분 뒤에 폭탄이 터져 암살을 모면했다. 또 1944년에는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테러를 피했다. 히틀러가 그때 죽었더라면, 반대로 케네디나 링컨, 박정희가 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암살 배경에는 대부분 커다란 정치적 이유가 있었지만 제20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를 암살한 찰스 기토는 프랑스 주재 미국 영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을 영사로 앉혀 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대통령을 암살했다. 그는 대통령을 쏜 자신의 총이 나중에 박물관에 전시됐을 때 멋있게 보이려고 진주 손잡이가 달린 총을 사기도 했다.

지은이 스티븐 파리시언은 박정희 암살의 배후로 미국을 의심한다. '1970년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중동에 오일머니가 넘치자 박정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친아랍 정책으로 전환, 한국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해 특수를 누리도록 했다. (중략)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발전과 소득 향상은 한국민에게 정치적 자유와 기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소강 상태이던 야당들도 들고 일어났고 마침 1977년 집권한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인권외교를 내세워 한국 내 반정부 세력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미군 철수를 선언하는 등 한-미간 갈등이 고조됐다. 이에 박정희는 미국 의존 국방정책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정책을 추진했고 미국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지은이는 박정희 암살의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박정희가 실시한 직장의료보험(현재 전국민 의료보험)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조차 전면적으로 실시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더불어 조선, 전자, 화학, 인터넷 산업 연구, 북방외교, 새마을운동 등 박정희는 실로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고교 입시폐지로 입시지옥 해소, 개도국 최초의 그린벨트 등은 요즘 선진국의 진보적 정권도 해내기 어려운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박정희는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해 상당한 배상금을 받아내는 자리에서, 다급한 한국 사정을 아는 일본의 독도와 관련한 강압적 요구와 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주체를 주장하는 북한이 1962년 백두산 일부를 중국에 넘긴 것과 대조적인 태도였다.

지은이는 '박정희 암살은 요즘 국제 분쟁의 해결사 또는 조정자로 비치는 카터 미국 대통령의 무능력과 결례의 결과'로 보는 듯하며 '만약 박정희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1년 뒤 카터를 물리치고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와 새로운 역사를 펼쳤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지은이 스티븐 파리시언은 영국의 역사가로, 사회사와 건축사 분야에 많은 책을 썼다. 514쪽, 2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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