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 3주차에 접어들면서 15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많던 말은 "잔인하다"였고, 많던 탈은 "잔인하기 때문에 제한상영 판정을 내린다"였다. 결국 1분 30초가량을 잘라낸 후에야 '악마를 보았다'는 대중에 공개가 됐다.
◇움직임'목소리'시선까지 극중 인물로 녹아나
이 영화는 사실 개봉 전, 아니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연출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이고, 두 주연 배우가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최민식, 이병헌이니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이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두 차례나 받은 것은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고, 이는 은근한 흥행 상승곡선으로 나타났다.
베일을 벗은 '악마를 보았다'에는 제목의 주체인 '악마'가 분명 존재했다. 그 악마가 최민식, 이병헌의 두 명이냐, 아니면 최민식 또는 이병헌 중 한 명이냐, 또 아니면 최민식과 이병헌, 여기에 김지운 감독까지 3명이냐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이 영화에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악마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객마다 지지하는 악마가 다를 테지만 기자는 '최민식 악마'를 최고로 꼽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목소리의 떨림, 심지어 시선의 머묾까지 그는 배우 최민식이 아닌 극중 연쇄살인마 장경철이었다.
그런데 스크린 밖의 최민식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다. '악마를 보았다'를 두 번 보고 그를 만나러 간 기자는 "이 잔인한 영화를 찍은 주인공이 된 입장은 어떠세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
"아, 우선 소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하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 게 아닌가. 우리 주위의 포장마차나 주점에서 흔히 보는 인심 좋은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기자도 같이 웃음을 지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에 불을 켜며 잠시 시간을 보내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끔찍하고 놀랐지만 의도 이상 잘 만들어져
"저 또한 찍으면서 끔찍했어요. 사실 영화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고 하기에 '이거 걱정이구나'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세더라고요, 세요. 김지운 감독의 의도나 처음 대본에서의 느낌보다 더 센 것이 보강된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어쨌든 대본 보면서 폭력의 끝까지 가보자 했으니 이만큼 나온 게 당연한 거죠. 다만 그 끝을 간다는 의미가 폭력에 중독된 사람의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서 악마의 출현을 다루고자 한 것이었거든요. 그런 의도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촬영이 진행돼 폭력이란 도구가 우리의 의도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스스로는 끔찍하고 놀랐습니다."
주연을 맡은, 더불어 살인마 역을 연기한 최민식 역시도 이 영화를 끔찍하고 놀랍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기자는 좀 더 다가갔다. "일부 팬들이 역겹다며 극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어요. 그런 팬들에게는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뿌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천편일률적 평가보다 다양한 반응 '바람직'
"창작물이라고 하는 것들, 흔히 연극이나 미술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등 모든 작품들은 선택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거죠. 다시 말해 관객의 몫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저는 어떤 창작물의 주제나 표현의 방법에 상관없이 소비자들의 주장과 반응을 적극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천편일률적으로 한 작품을 상대로 '걸작이다'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봐요. '불쾌하고 역겹다'도 한 의견이고, 대중의 취향을 좇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니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거부반응을 보이듯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생긴 이런 분위기는 우리 문화계가 건강하다는 얘기겠죠.(그럼 '악마를 보았다'를 세균으로 봐도 되는 건가요?) 아유. '악마를 보았다'를 세균으로 보자는 것은 아니고요. 정말 우리 영화가 세균은 아닙니다."(웃음)
◇선택 후회 없지만 소통 방법 반성
이번 영화는 그에게 있어 오랜만에 촬영장으로 발걸음 하게 한 작품이다. 상업영화로는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5년 만이고, 2009년 작인 예술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포함하면 1년 정도 지난 시간이다. 2000년대 중반 그의 활발한 연기활동을 상기한다면 지난 5년 동안 그는 너무나 조용한 배우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를 멈추게 한 데는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울부짖으며 문화훈장을 반납한 일과 한 대부업체의 광고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뭇매를 맞은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저를 이렇게 만든 현실을 원망하기보다 슬펐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교통정리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어질러진 신발들을 신발장에 차곡차곡 정리하듯 내 행동과 사회, 그리고 대중과의 관계 역시 정리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했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선택했던 소통의 방법에 대해서는 반성해요. 좀 더 이성적인 방법을 찾아 이해를 구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 칠갑 영화 다시는 안 할 것
그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최민식은 "단 한 가지 예외는 있다"며 "'악마를 보았다'처럼 피로 칠갑하는 영화는 다시는 안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체를 토막 내고, 여자를 강간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다른 여배우들이나 관계자들이 나를 안 찾을 것 같다"며 "빨리 피 냄새와 고깃덩어리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거듭 소망했다.
"안 그래도 몇 작품을 가지고 생각 중이에요. 아주 이상한 작품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내러티브가 튼튼하고,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이라면 바로 할 겁니다. 만약에 폭력이 있는 영화라면 맞고 싸워도 속으로 멍들어 밖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이어야 해요. 뭐, 정말 좋으면 피 나오는 것도 감수해야겠지만."(웃음)
최민식은 자신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많이 움츠렸다 뛰는 개구리가 멀리 뛰듯 자신도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영원한 연기자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환히 웃어보였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오랜만이라서 울컥하거나 새삼스럽기보다 편안하고 익숙하더라고요. 군대 휴가 나와서 늘 가던 카페가 새롭게 보이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여기가 원래 내가 있던 자리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과 더 장난치고, 재미있는 현장을 만들기도 했죠. 이런 모습이 진짜 최민식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신명 나는 최민식을 다시 볼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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