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인터뷰 지승호/시대의창

위기의 한국경제에 대한 속 깊은 제언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를 읽었다. '위기의 대한민국, 상생의 대안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표지의 문구 때문이었을까. 혼란스럽고 불안하게만 보이는 우리 경제의 여러 현상들 앞에서 속시원한 대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장하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유명한 상을 몇 차례 받으면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같은 책을 써서 국내에도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이번 책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쓰였으며, 2007년 말 초판이 나왔다. 그동안 정부도 바뀌었고 경제정책에도 변화가 많았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를 세계 금융자본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주주자본주의라고 본다. 주주자본주의는 단기간에 발생한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만큼 기업 발전을 위한 장기 투자를 하기 어렵다. 주주에게 많이 나누어주는 만큼 투자능력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을 많이 쓰며 하청단가를 깎고 노동자나 중소기업에 더 많은 압력을 넣는다. 재벌들은 중소기업에게 조금 남아 있는 것마저 빼앗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정규직 고용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복지제도가 잘 안 돼 있어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면 사람들의 생활이 불안해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이며, 자영업 비율이 너무 높다.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면서 기업의 고용관행과 하청업체와의 관계 설정 등에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안정적인 복지국가를 만들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낮은데도 불구하고 복지 거부감은 유난히 높은 편이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스웨덴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우리나라에서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실업보험을 80%나 주며, 실업 후에도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해고 부담과 노동자의 불안을 동시에 줄였다. 그런데 스웨덴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세계에서 파업률이 제일 높았던 나라이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타협을 함으로써 노사관계가 안정됐고, 그로 인해 이익을 보게 됐다. 복지제도와 경제 발전 전략을 잘 이어가면서 성공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세금을 많이 거둬도 거부감이 없는 이유가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더 보긴 하지만, 우리 가족도 공짜로 병원 가고 자식들이 공짜로 학교 다니는 혜택을 보니까 좋다'는 것이다. 수입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내더라도 교육, 의료가 무상이고 복지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정책만 잘 수립해서 지속적으로 실행하면 북유럽 모델, 아니 좀 양보해서 네덜란드 모델까지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경제가 아직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한미 FTA의 무모함에 대해 거듭 비판한다. 우리나라가 제법 잘 사는 것으로 모두 착각하고 있지만 미국, 스위스,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하면 국민소득이 3분의 1에 불과하며,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의 40% 정도이다. 개방을 하더라도 복지국가를 만들어서 개방 충격을 줄이고, 인적자원을 키워야 한다. 고용안정, 복지국가, 생산성 향상, 기업 경영권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무한경쟁 앞에서 우리 경제를 지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다양한 논의를 통해 가장 좋은 길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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