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찢겨진 '시민의 양심'…공공도서관 한달 200여권 훼손

경북대 중앙도서관 폐가실에 훼손된 서적들이 보관돼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경북대 중앙도서관 폐가실에 훼손된 서적들이 보관돼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김문정(34) 씨는 틈날 때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열람실을 찾아 책 읽는 재미에 빠진다.

하지만 책을 고르다 보면 짜증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씨는 "낙서가 돼 있거나 아예 찢겨져 나간 책을 자주 본다"며 "혼자 보는 책이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도서관마다 '상처'를 입어 '치료'가 필요한 책들이 쌓여가고 있다.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지만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훼손되는 책이 늘고 있다.

◆상처 입은 책, 상처난 양심

1일 오후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 중앙도서관 3층. 수험서가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에서 '형법 풀이책'을 펼치자 빨간색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점수를 매긴 자국이 선명했다.

한 영어 수험서는 중요 페이지가 접혀 있고 곳곳에 노란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연습용 답안지'를 책상마다 배치해뒀지만 무용지물. 낙서는 물론 책 속 주요 사진과 그림을 찢거나 칼로 도려낸 경우도 있었다.

경북대 도서관 이상조 사서는 "요리와 미술책은 사진이 생명인데 일부 대출자들은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으면 칼로 교묘하게 잘라간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찾은 수성구 범물동 용학도서관(장서 4만5천여 권). 지난 5월 문을 연 뒤 시범운영 중이고 14일 정식 개관하지만 대출은 이미 해주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파손된 책이 가장 많은 곳은 어린이 자료실. 책을 펴면 입체 그림이 나타나는 '팝업북'이 보수 목록에 오르는 단골손님이다.

인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은 첫 장부터 절반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그림 곳곳에는 테이프로 덧댄 부분이 수두룩했다. 책 뒷면에 '공공재산이니 깨끗하게 보자'는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다른 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 연령층이 이용하는 시립도서관은 대학도서관에 비해 파손되는 책이 더 많다. 북부도서관 관계자는 "한 달에 보고되는 훼손 도서가 200여 권"이라며 "마음에 드는 글귀에 줄을 긋는 것은 예사이고 어린이용 도서는 그림을 따라 그리는 등 훼손 정도가 더 심하다"고 전했다.

◆책을 고치느라 바쁜 손길

훼손된 책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용객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책마다 한 장 한 장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전에 훼손된 것이라고 하면 더 이상 추궁하기 힘들다.

경북대 도서관 관계자는 한 달 평균 80권 정도가 훼손된다고 추정했다. 이곳 김영수 사서는 "겉표지가 파손된 책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하루에 반납되는 책이 수천 권인데 내부가 훼손된 책은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이 학교 게시판에 글을 써 훼손 도서를 알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책 보수는 사서들의 몫이다. 각 도서관 사서들은 수시로 책 상태를 확인, 테이프를 붙이고 페이지가 분리된 책은 통째로 구멍을 내 고정 장치를 부착하는 등 응급처치를 하기 바쁘다.

용학도서관 최창익 사서는 "방학 때나 주말이 지나간 뒤에는 매일 오전 어린이 도서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며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그렇게 하겠지만 함께 오는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공공재산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성소영 사서는 "시민들을 위해 제공되는 도서관의 책인 만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 책처럼 소중히 다뤄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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