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상초월 가격대] 싼 게 비지떡? 맛·품질도 괜찮아요

휴가철이 지나자 추석이 다가온다. 돈 쓸 일이 많아 걱정이 태산이다.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가벼워진 지갑은 마음마저 공허하게 만든다. 이럴 때 값싼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나면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마침 우리 주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파괴'로 고객들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 많이 생기고 있다. 단순히 값만 싼 것이 아니다. 품질은 유지하면서 인건비와 고정비를 절감, 이를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과 서비스로 보답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 파괴했더니 손님이 늘었어요

지난달 25일 낮 12시 대구시 남구 대구교대 앞 중국음식점인 실비반점. 대구교대 학생들이 주로 찾는 음식점은 점심식사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은 바로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자장면 한 그릇에 1천500원, 짬뽕은 2천300원으로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착한 가격 덕분에 식당 문을 연 지 1년 만에 대구교대 학생들뿐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직장인들로 점심 때면 항상 만원이다.

주인 최영화 씨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낮췄더니 손님이 확 늘었고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며 "하루 매출은 평균 100만원을 넘긴다"고 했다. 그렇다고 음식의 질이 낮아진 건 아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음식과 똑같은 재료를 써 맛을 유지하고 있다. 몰려오는 손님 때문에 배달을 하지 않아 인건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어 가격을 낮추기 전과 비슷하게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구시 남구 이천동에 위치한 놋그릇 왕대포집 역시 퇴근길이면 '대포'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음식점의 막걸리 한 잔 기본 가격은 1천원, 고등어구이 등 안주가 3천원에 불과하다. 맛있는 안주를 배불리 먹고 적당히 취해도 가격은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 각종 계모임이나 직장인 등 단체손님들도 줄을 잇고 있다.

주인 신영완 씨는 "적은 이윤이지만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전략으로 가격을 낮춰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서영학 씨는 "맛있고 가격이 저렴해 친구나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며 이 음식점의 단골을 자처했다.

'천냥시대'란 간판을 내건 대구시 중구 MMC만경관 옆 천원 매장도 마찬가지다. 27일 찾은 이곳은 고급 비누, 장난감, 부엌칼, 냄비, 배터리 등 생활용품이 1천원대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화장품 세트도 1만원을 넘지 않고 구명조끼와 장난감 등 없는 게 없다. 이웃한 제빵 가게에서도 1천원이면 야채와 고기를 볶아 만든 햄버거 1개로 한 끼 식사를 거뜬히 때울 수 있다. 이곳 주인은 "경기가 어려워진 탓에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가격을 내렸더니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싸다고 놀리지 말아요

몇천원짜리 국밥에 1천원짜리 생활용품 등 가격 파괴 상품들이 무더기로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한동안 시장을 지배하던 이들 제품은 싼 가격에도 불구, 질이 낮아 이내 소비자들의 눈길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가격 파괴 상품들은 가격을 낮추는 대신 인건비와 고정비를 절감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해 품질을 유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되찾고 있다. 특히 질 좋은 중국산 제품과 외국 유명 메이커 제품을 반값에 구입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까지 등장,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대구 신암동의 막창전문집 '그날'에서는 각종 재료가 들어간 한방막창을 6천원에 즐길 수 있다. 주인 김병활 씨는 "우선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아내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데다 직접 요리를 배워 전문 조리인력이 필요없도록 했다. 또 매장과 주방을 터 조리, 주문, 계산을 한두 명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가격 파괴 비결을 설명했다.

중간유통 단계를 줄인 것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원인이다. 김 씨가 식당을 개업하기 전 수년간 식자재 유통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유통 분야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식재료업체 관계자들로부터 품질 좋은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구매하고 있다. 또 "밑반찬으로 사용하는 고추나 깻잎, 채소 등은 고향인 청도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가져와 싼 가격에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유행했다 사라져간 천원숍은 가격 대비 높은 품질로 다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이곳은 중국 제품들의 질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재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대구 북구 태전동에서 천원숍을 운영하는 윤계옥 씨는 "중국산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가격 역시 올랐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제품들은 마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인터넷 쇼핑몰 역시 가격 파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특히 외국의 유명 메이커 제품을 반값 수준에 구입할 수 있어 알음알음 이곳을 찾는 단골 고객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외국 유명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김진영 씨는 "시중에서 10만원 이상인 의류들도 4,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외국 상점과 직거래를 통해 유통마진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계명대 경영정보과 김영문 교수는 "과거 외식업을 위주로 나타났던 가격 파괴 현상이 통신, 서비스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인터넷과 중국산 제품 유입 등 경제환경의 변화로 다양한 형태의 가격 파괴 상품들까지 등장하고 있어 불황과 관계없이 가격 파괴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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