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 (9)사람을 불러오는 도시, 어바인

도시 전체가 공원, 낮은 범죄율…미국의 '강남 8학군' 명성까지

어바인은 학교와 공원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친환경 주거 도시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어바인은 학교와 공원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친환경 주거 도시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어바인 고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주민들.
어바인 고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주민들.
어바인시에 위치한 UC 어바인 대학은 우수 인재들이 몰리면서 미 서부지역의 명문 대학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어바인시에 위치한 UC 어바인 대학은 우수 인재들이 몰리면서 미 서부지역의 명문 대학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사람과 기업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어바인의 경쟁력입니다.'

미국 서부 해안의 최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남쪽으로 60여㎞에 위치한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irvine)시. 인구 20여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미국에서 끊임없이 주목을 받고 있는 도시다.

미 범죄수사국인 FBI가 6년째 '가장 범죄률이 낮은 도시'로, CNN 방송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3위 도시로 어바인을 선정했다.

또 미국 여성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2008년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이 도시를 뽑았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학부모들도 자녀들을 위해 '미국의 강남 8학군'인 어바인으로 찾아들고 있다.

◆녹지에 묻힌 도시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안전하게 뛰어 놀 수가 있는 곳이 어바인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특유의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던 지난 8월 초순 방문한 어바인 고등학교. 여름 방학 중이었지만 학교는 활기에 넘쳐 있었다. 정문 옆에 위치한 수영장에는 자녀들과 함께 수영교실에 참가한 학부모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잔디가 잘 자란 널찍한 운동장에는 미식축구와 육상을 배우는 학생의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고등학교지만 수영장이 3개, 운동장이 2개가 있습니다. 또 실내체육관과 헬스 클럽이 있어 학생뿐 아니라 주민들도 즐겨 찾는 곳입니다." 어바인 고등학교에서 5분거리에 사는 한국 교민 사공영목 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어바인을 선택했고 너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사공 씨는 "LA에 살다 이곳으로 이주한 지 8년쯤 됐는데 삶의 질이 LA 등 미국내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했다.

도시면적 180㎢, 인구 21만7천명의 어바인 녹지 비율은 40%. 도심 곳곳에 7개의 대형 공원과 80여 개의 소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차를 타고 도심을 둘러보면 마치 도시 전체가 공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녹생공간이 많은 도시다.

어바인이 갖고 있는 또다른 경쟁력은 교육과 치안이다.

서부 지역내 신흥 명문으로 부상하고 있는 UC 어바인 대학을 비롯해 도시내 5개 고등학교 모두가 전국 상위 4% 이내에 드는 우수 고교들이다. 도심내 술집이 없고 음란물 대여점이 없는 유일한 도시며 미국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숙자나 폭주족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어바인이다.

◆기업과 사람이 찾아오는 도시.

"기업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지원은 하지만 다른 도시에서 제공하는 면세 혜택이나 보조금은 없습니다."

어바인 강석희 시장은 도시 환경이 좋으면 기업을 자연스럽게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어바인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도시'이기도 하다.

어바인에 있는 기업 수는 모두 1만6천500여 개. '보톡스 주사'로 유명한 제약회사 엘러건,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게임회사 블리자드의 본사를 포함해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 중 36개 사의 본사가 몰려 있다.

또 기아자동차와 네이버(NHA) 미주 본사를 비롯 삼성 SDI 한국 기업들도 잇따라 어바인으로 찾아들고 있다.

기업 수가 늘어나면서 경기 불황에도 실업률은 7%로 미국 평균 12%보다 훨씬 낮으며 인구 또한 지난 1970년대 초반 1만 명에서 지난해 21만7천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도 9만9천달러로 미국내 최상위권에 이른다.

특히 어바인시 초중고 재학생 3만 명 중 한국인 학생 수가 4천명에 이를 정도로 조기 유학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으며 전체 인구 중 38%가 아시안계, 10%가 중동계일 정도로 국제적인 교육 도시다.

뛰어난 주거환경과 높은 교육 수준, 완벽한 치안이 삼박자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과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부동산 매니저인 앤드류 씨는 "서브프라임 사태 때 인근 도시들은 집값이 절반 이상 폭락했지만 어바인은 5~10% 전후 하락세를 보였다"며 "어바인의 흡인력이 집값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위해 준비된 계획도시

어바인은 철저한 계획도시다. 1868년 황무지였던 땅을 농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어바인 컴퍼니가 1950년대부터 친환경 정책을 도입해 만든 신도시. 어바인 컴퍼니는 도시 발전을 위해 1959년 4㎢ 땅을 단돈 1센트에 UC 어바인 대학에 제공했으며 로스앤젤레스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주거와 교육 조건이 구비된 신도시로 성장을 해 왔다. 또 1971년 거주민들의 투표로 어바인시가 만들어진 뒤에도 친환경 건축자재 의무화. 간판 제재, 굴뚝 산업 및 유해업소 허가 금지 등 각종 조례를 만들어 '쾌적한 도시' 로 보전해 오고 있다.

어바인시는 도시 발전과 함께 또다른 '성장 기반'을 추진 중에 있다.

해병대 항공기지였던 엘 토로 부지 545만㎡(165만평)을 그레이트파크(Great Park)라는 미국 최대 규모 도심 공원으로 만들기로 한 것. 이 공원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2배로 20개의 축구장과 12개의 야구장이 들어설 계획이다. 또 기업 활동 지원을 위해 업무지역인 IBC(Irvine business complex) 지역에 대해 18층까지 고층 건물을 허용하고 근로자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등 탄력적인 도심 관리 정책을 펴고 있다.

어바인시 관계자는 "그레이트 파크는 생태계 및 수자원 보호를 통한 생태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며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호흡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바인에서는 화려한 스카이라인이나 첨단 산업단지 등 성장 도시의 외형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생태 환경과 교육, 그리고 치안 등 주거의 기본 조건만 총족해도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시가 어바인이었다.

미국 어바인에서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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