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줄줄이 경매에 부쳐지고 있는 것. 부동산 시장이 끝 모를 불황의 늪에 빠져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매시장은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지역 경매시장에서는 아파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파트 경매의 경우 1건당 전국 평균 응찰자 수는 5명인 데 비해 대구는 8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를 낙찰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달 5일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경매물건으로 나온 달서구 상인동 ㅇ아파트의 경우 21명의 입찰자가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감정가(1억1천만원)에 근접한 1억699만원에 매각됐다. 7월 28일 대구지방법원 본원에서 실시된 칠곡군 왜관읍 ㅇ아파트 경매에는 26명이 응찰하는 바람에 1억1천200만원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유찰되기 전 최저 입찰금액인 9천500여만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 사람들은 투자도 보수적으로 한다. 경매 물건 중 가장 친숙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보수적인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증가세로 돌아선 경매 물건
경매는 물건 소재지 관할 법원에서 진행된다. 대구경북의 경우 대구지방법원 본원과 서부지원, 안동·경주·김천·상주·의성·영덕·포항지원에서 경매가 이루어진다.
경매 컨설팅업체인 리빙경매가 대구지방법원 본원과 서부지원에서 실시된 경매를 분석한 결과 경매가 진행된 물건은 2005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다 2008년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8년 9천797건이었던 경매 진행 물건이 2009년에는 1만2천50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7월까지 7천840건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6천939건을 넘어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경매 물건이 많아지면서 본의 아니게 반사이익을 누리는 곳이 있다. 바로 경매를 진행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법원이다. 불경기일수록 호황을 누리는 곳이 법원이라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경매 수수료는 계산방법이 복잡하다. 낙찰되었을 경우, 유찰되었을 경우, 낙찰 금액 등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낙찰 금액이 1억원일 경우 경매 수수료는 1.5%인 150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찰 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율은 낮아진다.
◆지역 경매시장의 특징
과거에 비해 경매시장이 많이 축소됐다. 대구지방법원의 경우 한때 경매를 담당하는 계가 19개 있었으나 지금은 본원과 서부지원을 합쳐 15계로 줄어들었다. 대구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인천의 경우 인천지방법원에 22계가 운영 중인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경매 물건이 1만2천50건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2005년 2만5천751건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원인은 만성화된 대구의 경기침체 때문이다. 경매는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불경기에는 경매 물건이 늘어나고 호경기에는 줄어드는 것이 경매시장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러한 불문율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경기를 누린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역 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다 보니 더 이상 파산할 기업도, 개인도 없다는 것. 리빙경매 하갑용 대표는 "경매는 신규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입과 퇴출이 왕성하게 이루어져야 경매도 활성화되는데 대구는 신규 투자가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경매 물건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경매시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인터넷으로 경매 정보가 공개되면서 경매시장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경매시장에 일반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경매가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일반인 위주로 경매시장이 재편되는 추세다.
통신회사를 다니다 지난해 퇴직한 임진양(58·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최근 경매를 통해 아파트 상가를 매입했다. 임 씨는 "이자율이 낮아 퇴직금을 통장에 넣어 두기도 마땅치 않았고 주식에 투자하려니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이리저리 재테크 궁리를 하고 있는데 먼저 퇴직한 사람이 경매로 낙찰받은 상가를 임대해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비 정도를 벌고 있는 것을 보고 경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백원규 한솔합동법률사무소 소장은 "과거 경매 정보 접근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전문가들이 경매를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정보가 투명하게 관리되면서 오히려 시장에서는 전문가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일부 경매 분야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초보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전문가들은 경매에 나온 물건의 경우 근저당, 가처분, 가압류 등이 복잡하게 설정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권리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경매와 관련된 권리는 크게 소멸되는 것과 인수되는 것으로 나뉜다. 경매와 함께 소멸되는 권리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수되는 권리는 낙찰자에게 화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고등기, 가처분, 가등기, 유치권 등이다. 예고등기, 가처분, 가등기 등이 설정되어 있을 경우 경매를 통해 낙찰받았더라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초보자의 경우 인수되는 권리가 있는 물건을 경매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예고등기, 가처분, 가등기는 등기부등본에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반면 유치권(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담보로 하여 빌려준 돈을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맡아 둘 수 있는 권리)은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할 수 없다. 유치권이 있는 걸 모르고 낙찰을 받았다가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매에 참가하기 전 물건 현장을 방문해 유치권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유치권은 현장을 방문하더라도 확인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초보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리빙경매 하갑용 대표는 "일반인들이 복잡한 권리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권리관계가 복잡한 물건은 경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인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권리관계가 깨끗하고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물건 위주로 경매에 참가해야 낭패를 볼 위험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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