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두 주 동안 우리 귀에 가장 많이 들린 것은 거짓말에 대한 공방이었지 싶다. 정치권에서부터 스포츠계와 연예계까지 어느 쪽이 진실이냐를 두고 무수한 말들이 오고 갔다.
'거짓말하기'는 인간 본성의 이채로운 무늬라고 할 만큼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요소이다. 어떤 사건에서 진실은 단지 하나뿐이지만 거짓은 수많은 변종을 거느리고 등장한다. 음모를 꾸미는 것이나 위험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술수에서부터 약속을 어길 때 늘어놓는 변명이나 광고 속 대사, 성형수술도 일종의 거짓일 테다. 소설을 쓰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것도 거짓의 한 종류임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거짓말의 다양한 변종에서 우리는 인간의 기지와 책략 혹은 본성의 한 면모를 발견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 후에 식량을 얻으려고 외눈박이 거인인 폴리페모스의 동굴로 갔다가 자기 이름을 '우데이스'(아무도 아닌 자)라고 속인다. 이에 마음을 놓은 외눈박이 거인에게 술을 먹여 그의 외눈을 찌르는 데 성공하고 동굴에서 살아나오게 된다. 성서에서도 예수의 충실한 제자인 베드로는 예수가 사형 언도를 받는 현장에서 한 계집종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결코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맹세한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경우가 기지를 발휘해서 사지(死地)를 빠져나온 것이라면 베드로의 경우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거짓말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기지에 감탄하고 궁지에 몰린 인간의 연약함에 안타까워한다. 소설에서도 어느 순간의 거짓말은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여 여느 때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안겨준다. 그러나 악의에 찬 거짓말, 욕망의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거짓말, 그리고 무엇보다 단선(單線)적인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을 성찰할 깜냥도 못될뿐더러 삶의 존엄성마저 훼손시킨다.
지난 한두 주 동안 우리는 여러 거짓말의 변종 가운데 가장 격이 낮은 단선적인 거짓말의 공방을 지켜보아야 했다.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고지 14좌를 완등했다는 산악인 오은선 씨가 칸첸중가에 등정을 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한 방송에서 제기된 후 신문과 인터넷에서 똑같은 말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주변 정황은 등정에 의문을 달고 있는데 본인은 분명히 올랐다고 한다. 오 씨가 거짓말을 한다기보다 공방의 성격 자체가 단선적이라는 얘기다. 이 무렵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도 거짓말 문제로 치고받았다. 국민들은 40대 총리의 화려한 등장을 거의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던 참에 단순한 사진 한 장이 그를 느닷없이 낙마시켰다. 사진 때문에 그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피겨 선수 김연아와 오서 코치가 결별하는 과정에서도 거짓말 공방이 벌어졌고 나라의 도장인 국새도 거짓으로 얼룩이 져 있는 게 밝혀졌다.
이런 거짓말이나 거짓말에 대한 공방은 구경꾼들을 짜증나게 한다. 단순하고 지리멸렬해서 그 속에 인간 본성의 무늬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결국은 예스나 노밖에 없는 얘기들이지 않은가. 때론 이런 거짓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까지도 자못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수년 전 학력 위조 등으로 거짓말을 끝없이 펼쳤던 신모 씨의 사건에서도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자기 삶에 깊은 상처를 받았지 않았던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를 보자. 나무로 만든 인형 피노키오는 명랑하고 재주도 많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순간 코가 길어진다는 점이다. 그걸 몰랐던 피노키오가 어느 날 거짓말을 한 번 하자 코가 쑥 자라났고 두 번 더 하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코가 길어졌다. 요정의 도움으로 딱따구리 떼가 날아들어, 길어진 코를 쪼아서 예전 코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사람에게도 삶의 존엄성을 해치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피노키오처럼 딱따구리들이 몰려들어 긴 코를 갉아먹어서 용서해주는 흥미로운 벌칙까지 보탠다면 꽤 우스울 것 같다.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 단선적인 거짓말들이 지겹고 짜증나는 김에 '피노키오'나 읽으면서 시원한 공상을 해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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