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빈곤의 도시' 대구…절망에서 쏘는 희망의 화살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55·대구시 달서구 장기동) 씨는 한때 잘나가는 중소기업 대표였다. 섬유 수출로 재산도 제법 모았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환율 폭등으로 수출 물량이 급감하면서 부도가 났기 때문. 김 씨는 부도를 막기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빚 갚을 길이 막막했던 김 씨는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김 씨는 "파산하는 과정에서 가정은 풍비박산 났다. 대학교에 다니던 딸은 학업까지 중단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기업간 임금격차 심화,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 양산 등으로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를 제외한 전체 가구 중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가처분소득 기준)은 2003년 70.1%에서 2005년 68.2%, 지난해 66.7%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빈곤층 비율은 2003년 11.6%에서 2005년 12.7%, 2007년 12.9%, 2009년 13.1%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소득 분배 불균형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분배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3년 0.277에서 2009년 0.293로 올라갔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다.

◆대구는 빈곤의 도시

대구의 경우 중산층 몰락에 따른 빈곤층 증가 현상이 타 시·도보다 더 심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2004년 3.2%에서 2008년 4%로 0.8%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상승률 0.3%포인트(2.9%→3.1%)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2008년 대구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광역시 가운데 광주(4.3%) 다음으로 높았다.

소득·소비 만족도 조사에서도 대구는 매우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 통계청이 전국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1만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빈곤층 현황 설문조사에서 대구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소득에 만족을 표시한 비율은 10.9%로 전국 평균(14.1%)을 밑돌았지만 소득에 불만족을 표시한 응답자는 55.4%로 전국 평균 46.6%보다 훨씬 높았다. 소비생활이 만족스럽다는 응답도 12.7%로 전국 평균(11.7%)보다 낮은 반면 불만족스럽다는 비율은 44.6%로 전국 평균(40.2%)을 웃돌았다.

◆왜 대구에서 빈곤층이 양산되나

가장 큰 이유로는 취약한 대구의 산업구조를 들 수 있다. 대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던 섬유와 건설, 유통업이 몰락하면서 대구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 자연스럽게 대구 근로자들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 구조에 노출됐다. 지난해 대구 상용근로자 월 평균 임금은 전국 최하위권인 202만1천827원으로 전국 평균 230만4천167원의 88% 수준이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복지 서비스도 원인으로 꼽힌다. 인권운동연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 대상 '주민소득지원 및 생활안정기금' 운영실태를 보면 지난해 대구 8개 구·군에 책정된 예산은 82억여 원이었지만 대출이 이루어진 금액은 불과 2억6천600여만원에 불과했다.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까다로운 대출조건 때문. 특히 상당수 구·군에서 대출 조건으로 명시한 보증인이 문제가 됐다. 대다수 저소득층이 보증인을 세울 형편이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인권운동연대 관계자는 "은행 대출에서도 사라진 연대보증이 생활안정기금 대출에 남아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생활안정기금은 대구시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복지 서비스는 수급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때 빛을 발하게 된다. 제주시가 무담보·무보증 대출조건을 내세워 생활안정기금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반빈곤 운동에 앞장선 대구

심각한 대구의 빈곤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운동인 '반빈곤네트워크'가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결성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는 빈곤층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제도를 개선하자는 취지 아래 2007년 말 결성됐다. 현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쪽방상담소,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12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체납된 건강보험료 때문에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구제하기 위해 올 3월 체납 건강보험료 탕감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70가구의 신청(053-290-7474)을 받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민원을 제기, 45가구가 탕감을 받았다.

2008년 기초생활보장제 상담가 양성 교육을 시작한 데 이어 올 7월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 17가구를 선정해 가계부를 작성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빈곤층의 생활 현실을 공개함으로써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 확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경우 전국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 최저생계비는 전국 가구 평균소득의 40%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방학 동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빈민 현장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겨울방학 동안에는 '주거빈곤'이라는 주제로 지역 대학생들을 모아 쪽방체험을 진행했다. 올 여름방학에는 '노동빈곤'이라는 주제 아래 지역 대학생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간의 간담회를 주선했다. 빈민 현장체험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대학생들에게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쪽방체험을 통해 쪽방에서 하룻밤을 잔 대학생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충격을 받았으며 빈곤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올 5월 1일 노동자의 날을 맞아 국채보상공원에서 길거리 민생상담 부스를 운영했던 반빈곤네트워크는 오는 10월 17일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에는 대구백화점 앞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기초생활수급자 1천17명을 모아 권리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11월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반빈곤학교도 개설할 계획이다.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반빈곤네트워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심각한 지역 빈곤문제에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우리 지역에서 빈곤문제가 사회담론이 된 적이 없다. 대구시도 복지행정을 외치고 있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 대구시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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