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광복절과 국치일 즘이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친일파를 척결하자는 외침과 위안부, 강제징용, 식민지 수탈 등에 대한 일본의 사과 요구 등이 그것이다. 올해는 국치 100년이라 더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외부의 힘만으로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라가 무너질 때는 '나쁜 이웃'과 더불어 내부의 썩은 고름이 손을 잡기 마련이다. 특히 '한일합방'은 군대의 직접적인 침공이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일합방이 '날조'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지만, 조선(대한제국)이 일본과 한판의 결전도 없이 무너진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일합방을 아이들 싸움에 비유하자면 '때리지도 않았는데 울어버린 격'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복도에서 보던 그림이 생각난다. 아마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전투도'였을 것으로 기억되는데, 젊은이 늙은이 부녀자 할 것 없이 돌과 곡괭이, 낫을 들고 조총을 든 일본군에 맞서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싸워 나라는 지켰다는 교훈이었다.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을 폄훼할 의도는 없다. 그 그림을 보면서 나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도대체 누가 저 무지렁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는가? 전투 훈련은커녕 무기도 없는 늙은이와 부녀자들이 돌멩이와 곡괭이를 들고 나아가 총을 든 적군과 싸우는 게 마땅한가? 늙은이와 부녀자들로 하여금 돌멩이와 곡괭이를 들고, 조총으로 무장한 당시 아시아 최강의 군대에 맞서도록 한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뿐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민간인과 의병으로 구성된 6만 명의 사람들이 9만에 가까운 일본군에 맞서 돌멩이로 맞서다가 거의 전멸했다. 진주성에서 농성했던 조선인들 중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은 기껏해야 3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정규군이 아니라 대부분 의병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수군은 조정으로부터 못대가리 하나 받은 게 없다. 전장의 군인들이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 전함을 만들고 농사를 지어 식량을 조달하면서 싸워야 했다. 이것을 국가라고 할 수 있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매년 친일파 논란이 일어난다. 이름난 문인이나 정치인 중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 그렇게 뛰어난 시(詩)적 업적을 남기고도 친일파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가치가 훼손되기도 한다. 그 뛰어난 시적 재능을 지닌 사람을 친일파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친일 안 한 사람도 많다'는 말은 정당하지도 않고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당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일제의 친일 협박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친일한 사람에게 그 잘못을 묻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들이 친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들을 더 크게 나무라야 한다. 이완용과 송병준뿐만 아니라 대원군, 고종, 민씨 일족을 비롯해 그 앞의 왕들과 당대의 세도가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선조와 인조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이야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원군, 고종, 민씨 일족 등은 반성의 대상이지 흠모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을 두고 비운의 왕이니, 독립 노력이니 하는 말은 분에 겹다.
조두진(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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