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교에서는 교내 동아리가 단연 최고의 화제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인 '창의적 체험활동'이 창의·인성 교육의 활성화를 내건 가운데 학생들의 창의·인성 교육 수단으로 동아리 활동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동아리가 뭐 대수냐 싶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동아리 활동은 그 의미와 중요성이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제 동아리 활동은 학생 개인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를 보는 중요한 척도이자, 향후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경명여고 '1인 1동아리'
"이제는 무슨 대학에 보냈느냐가 아니라 그 학생이 제대로 꿈을 찾아갔느냐가 교육 성패의 관건이 됩니다. 꿈을 찾아가는 활동이 바로 동아리 활동이지요." 3일 만난 경명여고 한준희 교사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규정한 4가지 영역 중 자율·봉사·진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게 바로 동아리 활동"이라며 그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경명여고는 올해 '1인 1동아리'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 1·2학년 전교생 820여 명이 모두 38개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한 개 동아리에 20명꼴로, 1·2학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경명여고 교내 동아리가 타 학교와 다른 점은 교과와 동아리를 연계한 '교과 중심 동아리'라는 점이다.
38개 동아리의 면면을 보면 학교에서 이런 동아리 구성이 가능한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학교 동아리 하면 몇몇 취미 활동으로 채운 생색내기 조직일 것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훈민정음부, 희곡시나리오창작부, 윤리사상연구부, 역사신문부, 과학탐구토론부, 스피치커뮤니케이션부, 한국사능력검정시험대비부, 수리논리탐구부, 수학탐구부, 번역작가부, 영미문화부, 일본탐구부, TEPS 대비부, 한자능력시험대비부 등 생소한 동아리 이름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수능기출문제분석부'라는 동아리도 있다. 이런 것도 동아리인가 싶지만 한 교사의 생각은 다르다. "학교생활이 입시와 분리될 수 없는 고교생들에게는 교과 동아리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라면 영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그 안에서 진로를 설정해 나가는 식이다.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나 봉사 활동으로 영역을 넓힐 수도 있다. 웹 디자인부라면 컴퓨터 회사에서 현장 체험을 할 수 있고 봉사에 나설 수 있다. 수학 탐구부라면 대학 수학과를 방문해 교수를 만나 볼 수 있고, 업무를 도와주면서 봉사 점수도 받을 수 있다. 한 교사는 "수능기출문제분석부라는 것도 한 개의 수학 문제를 놓고 2, 3시간씩 교사와 토론하며 심층적으로 공부해 보는 동아리"라며 "앞으로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고, 교과형 논술이 부활되면 이런 심화학습이 큰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경명여고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사들의 합심된 관심과 노력 덕분이다. 경명여고는 2009 통합교과논술우수학교, 2009 삶을 위한 글쓰기 우수학교, 2009 학력 향상 우수학교, 2009 학교 평가 우수학교 선정 등 이미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2008년부터 시작한 '꿈반이'(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활동의 성과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한 교사는 "동아리 활동은 지역 사회와 연계되는 만큼 학생들의 진로 설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덕원중 등산 동아리, 거인 산악회
"등산은 인내심을 기르고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최고의 인성 교육 수단이지요."
덕원중에는 여느 학교에선 찾아보기 힘든 동아리가 있다. 1998년 10월 대구 중학교 가운데는 가장 먼저 결성된 등산 동아리, '거인 산악회'다. 현재 14대까지 내려온 이 동아리에는 선·후배 등 150여 명이 소속돼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산악회를 만든 전경수 교사는 83년 대구등산학교 설립 발기인으로 등산 마니아. 히말라야 원정까지 다녀왔다. 전 교사는 "중학교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의 중요성을 몸소 경험했다"면서 "학생들이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체험들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등산 동아리 학생들은 평소에는 1박 2일 월례 등반을 하고, 방학 동안에는 3박 4일 장기 등반을 한다. 월례 등반 때는 비교적 등산이 쉬운 팔공산이나 대덕산, 성암산 등 가까운 곳을 찾고 장기 등반 때는 천왕산, 가지산, 신불산, 운문산 등 밀양, 청도, 언양 일대를 아우르는 영남 알프스에서 산을 탄다. 등반대의 원칙은 '비박'. 침낭에 누워 밤 하늘을 바라보며 잠 드는 경험은 단연 최고다.
안전이 필수인 만큼 평소 놀토 등을 활용해 암벽 등반을 하면서 체력을 기르거나, 산악 기상 대처법, 취사법, 보행법 등 등산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덕원중·고교 운동장에 설치된 인공 암벽은 학생들에게 좋은 체험 공간이 되고 있다. 전 교사는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길러주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불로중, 교과 신문 제작 동아리
불로중학교는 지난해 4월부터 전교생이 참가하는 교과 동아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동아리는 국·영·수·사·과학과 음악, 미술 등 모두 7개로, 교과 신문 만들기가 핵심이다. 최재현 교사는 "교사와 학생이 학기 초에 함께 단원과 연계한 주제를 선정하고 나면, 프로젝트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 동아리에서는 방과 후 또는 토요 휴업일에 모임을 갖고 그 주에 배웠던 교과 내용을 복습한다. 학력이 부진한 학생은 친구들과의 토의를 통해 실력을 쌓을 수 있고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쯤 되면 학교 보충수업과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교과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학습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길러진다.
1학년생들이 만든 '국어 교과 신문'을 들여다보자. '우리말의 맛과 멋' 단원은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 만들기 활동으로, '읽기가 힘이다' 단원은 오늘날의 식생활 문화 분석으로, '공감과 설득' 단원은 공익 광고를 분석해보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3학년 '비판하며 읽기'에서는 토론 신문을 만들어 보고 '읽기와 토의' 단원에서는 김치의 세계화 방안 탐구 보고서를 써 본다.
이런 식으로 국어 동아리는 '간편 이모티콘 사전'을 만들었고, 영어 동아리는 좋아하는 애완 동물을 영어로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어 교내에 전시했다. 최 교사는 "지난해부터 창의인성 인정 운영 학교로 지정되면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며 "교과 동아리는 긍정적인 교우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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