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정순국 100년] 蹈海殉國 김도현

"동해에서 죽어 왜적 멸망시키겠노라"

김도현, 바다를 밟고 들어가 순국하다.

1914년 12월 23일 동짓날, 짙푸른 동해바다, 차디찬 바람 맞으며 한 선비가 섰다. 삶을 마무리 짓는 시 한 편을 남긴다. 뒷부분만 보면 이렇다. '홀로 외롭게 서니 옛 산만 푸르고 아무리 헤아려도 방책이 없네. 희고 흰 저 천길 물속이 내 한 몸 넉넉히 간직할 만하여라.'

그는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출신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1852~1914)이다. 1895년 12월 의병을 일으키고, 예안의병의 중군이 되어 상주 태봉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공격한 태봉전투에 참가했다. 강릉의병장 민용호가 도와달라고 급보를 보내자, 그는 강릉과 삼척 일대를 돌며 전투를 벌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뒷산에 성을 쌓고 방비를 다졌다. 전기 의병 가운데 가장 오래 버틴 기록을 남겼다.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고생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스승 이만도가 단식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승을 찾아, 가시는 길을 따르겠노라고 말씀을 올렸다. "자네는 어른이 계시지 않은가?"라는 스승의 말씀에, 그는 "그럼 뒤에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스승을 보낸 뒤 그는 영양에 영흥학교를 세워 사람 기르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1914년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스승을 따라 갈 때를 짚어 보았다. 그 날이 바로 동짓날이다.

삶을 마감하면서, 그는 중국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의 '도해'(蹈海) 옛이야기를 떠올렸다. "무도한 진나라가 천하를 차지한다면, 나는 동해로 걸어 들어가 죽을 뿐이다." 그의 절의와 지혜는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의 공격에 맞서게 만들었다. 김도현은 노중련의 절의와 결단을 생각하며, 동해야말로 자신이 떠날 마지막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포들에게 보내는 유시를 남겼다. 동포들에게 모두 일어나 왜노와 싸우기를 당부하면서, 스스로 동해에서 죽어 왜적을 멸망시키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차디찬 바람, 검푸른 바다를 넘어 들이닥치는 파도, 거기에 엎드려 있는 검은 바위를 밟으며 바다로 들어갔다. 도해순국(蹈海殉國)이다. 따라온 조카에게 자신의 시신을 찾지 말라고 일렀다. 그렇게 그는 갔고,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 얼마나 장렬한 최후인가! 스승의 뒤를 좇아 4년 만에 그 길을 갔다. 무엇이 기개이고 절의인지,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이라면, 영해 대진해수욕장 남쪽 관어대 바닷가에 서 있는 도해단에 서 보라.

(김희곤 안동대 교수·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