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양심 불량은 조그만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별것 아닌 거짓말 같은데도 부모님으로부터 혼쭐이 나는 것은 '바르게 살라'는 엄한 채찍이다. 그런데 커가면서 그 엄한 원칙이 차츰 물러지기 시작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부모님들은 원칙에 없는 행동을 한다. 돈을 들여서라도 내 아이를 반장, 회장을 시켜야겠다는 식이다.
중고생이 되면 일단 위장 전입은 기본이다. 아예 죄의식조차 없다. 급기야 일류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극단으로 치우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가능한 한 병역 면제 쪽으로 몰고 가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졸업하면 어떻게든 줄을 대서라도 좋은 곳에 취직시키려고 한다. 자식을 위한 눈물겨운 부모 사랑이지만 이러는 동안 '바르게 살라'는 어릴 적 채찍은 점점 사라진다.
경쟁 사회, 물질 만능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사회는 멍들어 간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이것이 마치 승자의 전략인 양 호도되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원칙에 대해 촘촘하던 사회의 그물망도 점차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원칙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칙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은 힘이 없고 '빽'이 없기 때문이라는 패배감에 젖는다. 이런 사회는 머지않아 사분오열될 게 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뒤늦게 '공정 사회'를 외치고 나왔다. 또 개혁인가. 고위층 몇 명 자르기는 쉽다. 그러나 원칙을 어기면 상당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개혁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다.
"미국은 약점도 많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정직한 문화를 심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입니다." 워싱턴 대통령이 200여 년 전 고별사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올 초,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손바닥에 쓴 커닝용 메모를 보고 연설하다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연설 도중에 손바닥 한 번 본 것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는 미국이다. 그 '정직한 문화'가 변함없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 부럽다. 이것이 바로 후쿠야마 교수가 강조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아닌가.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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