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키스를 하려고 하자 여자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책을 읽어줘야 해"
남자는 욕망의 덩어리를 가득 부풀려 여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책을 먼저 읽어달라고 요구를 한다. 남자의 성적 욕망은 책을 읽어주면서 차츰 사라지고 진지해진다. 이 이야기는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오는데 이 대목이 내게는 한동안 커다란 화두였다. 이 야릇한 의식을 통해 남자는 차분해지고 여자는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문학작품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속으로 꾹꾹 눌러놓고 괜찮은 척하는 억압, 용기 없는 사람이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합리화, 결국 실패하고 마는 승산 없는 게임의 질투,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오해와 집착과 분노 외에도 우리는 수많은 심리적 갈등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 문학작품을 통한 극복은 후유증 없는 좋은 예라 하겠다.
남의 작품을 읽고 자신과 똑같은 입장을 발견할 때 우리는 동일시를 통하여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주인공이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를 학습하게 된다. 또 어떤 작품은 읽으면서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고 인지하고 자신의 불행을 소산시키게 된다. 불안이나 분노와 좌절 같은 것은 흔히 나쁜 정서로만 각인되어 있지만 문학작품은 그것을 오히려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외적, 내적인 자연치유의 긍정적인 힘을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다. 그것을 끌어 올려 글을 쓰게 하고 치유에 이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문학작품이다.
일전에 K 교도소 소장을 만나 문학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문학 치료에 특히 관심을 보였던 그는 알고 보니 시인이었다.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그는 내게 자작시를 들려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를 읽어주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민원이 종종 일어난다. 분란이 심한 경우, 그는 직접 집무실로 사람들을 불러 사정을 들어보기도 하는데 민원인은 먼저 그가 읽어주는 시를 들어야 한다.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을 앉혀 놓고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시를 읽어준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감정을 가라앉히게 되고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언성을 높일 일도 차근차근 해결방법을 찾아 나간다. 그러니 그는 이미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심리적 치유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시 읽어주는 남자'라고 이름 붙였다. 이 일은 요즘 내게 흥미롭고도 커다란 화두가 되어 있다.
주인석(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