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고 이별하는 까닭, 꽃이 피고 지는 까닭은 거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의 허락을 받아서 산다. 시간은 어떤 불평도 이의도 통사정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나무든 별이든 차별이 없다. 그래서 시간은 폭력적이고 또한 공평하다.
시간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복종을 요구한다. 우리의 젊음을 훼손하고, 꿈을 짓밟고, 인연을 끊어 놓는다. 저항하는 이는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가고, 순종하는 이는 제 발로 걸어서 갈 뿐이다. 무엇도 감히 시간에 맞설 수는 없다. 애초에 시간이 허락했던 것을 시간이 거두어가니 달리 도리도 없다.
윤경희의 시는 그런 이야기다.
'푸른 오가피 잎들/ 계절을 헤엄친다/ 희부연 유리병 속/ 따뜻한 차(茶) 같은/ 제 몸을 우려내는 일/ 한 시절 지워가는 일' -마흔의 시간-
시집의 맨 첫 번째 시인 이 짧은 한 수의 시조 안에 시간을 보는 시인의 모든 눈이 녹아 있다. 세상에 나온 오가피 잎은 푸르게 푸르게 헤엄치다가, 따뜻한 찻물에 앉아 제 몸을 우려낸다. 한 생명이 세상에 나서 가는 길을, 마땅히 그렇게 가야 할 길을 오롯이 보여주는 셈이다. 푸른 잎은 찰나를 살고 떠나지만 그것이 허무하거나 무의미하지는 않다. 푸른 잎이 따뜻한 찻물로 우러나니 말이다.
윤경희 시인은 '시간이 어떠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시인은 다만 시간을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 피고 지는 꽃들, 만나고 이별하는 것들을 세심한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문학 평론가 문무학 씨는 이를 두고 "삶의 피로가 아니라 삶을 떠받치는 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71편의 시를 묶었으며, 1부 비, 2부 혼자 밥 먹는 여자, 3부 붉은 잠자리, 4부 섬으로 구성돼 있다. 윤경희 시인은 현재 대구문인협회 편집간사이며, 시 전문지 '유심' 신인문학상 시조부문으로 등단했다. 125쪽, 8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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