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가을에 오는 영화들

가을만 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뉴욕의 가을'(사진)에서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 공원을 다정스럽게 거니는 연인도 떠오르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사이좋게 낚시하는 장면도 생각이 난다. 햇빛에 비치어 잔물결이 흔들리는 윤슬과 아버지 어깨에 쏟아지는 가을볕, 그리고 떨어지는 낙엽들이 참 좋았다.

'만추'에서 하루 종일 벤치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는 그 사람을 뒤로 한 채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 여인은 참 쓸쓸했다. 애써 슬픔을 참으며 기차에서 이별하는 '파 프롬 헤븐'의 줄리언 무어의 눈빛은 또 얼마나 안타까웠나.

"왜 예술영화는 가을에만 개봉하나요?" 인터넷의 지식 검색에나 나올 법하지만, 가을만 되면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 극장가는 '단순무식'한 편이다. 뜨겁고 매운 국 하나만 달랑 나오는 식이다. 때리고, 부수고, 죽이는 영화들 일색이다. 올 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나. 특히 잔혹해 스크린을 피로 흥건히 적신 여름이었다.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와 같이 아예 잔혹성을 키워드로 내세운 영화는 그렇더라도 '익스펜더블'과 '토너먼트' 같은 액션영화도 잔인함이 이에 못지않았다. 총에 맞아 몸이 반으로 잘려 튀겨나가질 않나, 수류탄이 터져 몸이 산산조각나질 않나. 몸 조각이 파편처럼 떨어지는 장면은 사실감보다는 묘사가 과하다는 느낌이 더 든다. '피라냐'에서는 보트 모터에 머리카락이 끼인 여성의 얼굴 거죽이 벗겨지고, 쇠줄에 몸통을 맞은 여인의 상반신이 두동강 난다.

붉은 국밥만 나오는 여름에 비하면 가을 극장가는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밥상이다. 꼼꼼히 살펴보면 볼 만한 영화들이 가장 많은 시기다.

가을에 좋은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는 것은 순전히 흥행 때문이다. 계절별로 보면 가을은 비수기다. 대형 액션영화로 휩쓸고 난 후 나락을 줍는 시기다. 블록버스터라는 콤바인이 지나갔으니, 수확은 미미한 편. 그래서 흥행 때문에 밀려 있던 영화들이 대거 개봉날짜를 잡을 수 있는 때다.

그리고 가을에는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영화들이 많이 개봉된다. 가을을 타는 관객들의 정서를 파고 들기 위한 것이다. 이 가을, 나를 적시는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가을이 되면 설레는 이유 중 하나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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