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몸꽃'차근우 / 이종암

오어사 뒷마당 배배 뒤틀린 굵은 배롱나무

뇌성마비 1급 지체장애자

영호 형님 작은아들 차근우 같다

말도 몸도 자꾸 안으로 말려들어

겨우 한마디씩 내던지는 말과 몸짓으로

차가운 세상 길 뚫고 나가

뜨거운 꽃송이 활활 피워 올리는 나무

푸른 대나무가

온몸의 힘 끌어 모아 겨우 만든 마디

촘촘한 마디의 힘으로 태풍을 견디듯

자꾸만 뒤틀리고 꺾이는 몸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형극의 몸으로

수도 없이 들어올린 역기로 다져진

팔뚝 근육, 차근우

시꺼먼 가슴 뜯어 길을 만들었다

부족한 몸뚱어리 빚고 또 빚어

제 집 한 채 거뜬히 세운

세상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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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우는 이름답게 '근육의 친구'라 할 만하다. '팔뚝 근육' 하나로 그는 세상에 우뚝 선 것이다. 이종암 시인이 근래 상재한 시집의 표제시인 '몸꽃'은 그러니까, 차근우가 "활활 피워 올린" 뜨거운 '팔뚝근육꽃'이었구나. 이름과 성으로 미루어 쉬이 짐작 가는 시인에게 이토록 눈물겨운 '보물덩어리' 작은아들이 있었구나.

그 '팔뚝근육꽃'은 "시꺼먼 가슴 뜯어" 만든 길이자, "부족한 몸뚱어리 빚고 또 빚어" 거뜬히 세운 집 한 채이니, "세상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몸꽃"일 수밖에 없을 터.

내게도 그보단 좀 모자라지만 '팔뚝꽃'이라 할 만한 게 있으니, 왼팔의 20년 넘는 혈액투석 주삿바늘 자리 부푼 상처가 그것이다. 근우처럼 "몸꽃"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많지만, "온몸의 힘 끌어 모아 겨우 만든 마디'라는 점에선 동류(同類)의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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