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나 초콜릿, 청량음료 등이 발달한 요즘은 당분 섭취를 줄이라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 음식은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단 음식 가운데 으뜸은 엿이었다. 명절이 되면 엿 고는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워 모두가 침을 삼켰다.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 가운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도 엿이었다.
엿은 신진대사에 필요한 당분과 칼로리를 공급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배 고플 때 단것을 먹으면 공복감이 사라진다거나, 어린이들이 단것을 유독 좋아하는 것도 신체활동 유지와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칼로리를 가장 빨리 채울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 엿을 선물하는 의미를 대개 '엿처럼 철썩 붙어라'는 기원으로 해석하지만, 다르게 보면 두뇌 활동이 왕성하고 긴장감이 높아 혈당 소비가 심한 사람에게 당분을 공급한다는 과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절에 가서 과거 공부를 하는 자녀나 남편을 위해 엿을 고는 관습, 임신부에게 엿을 먹이는 풍습, 밤늦게 공부하는 자녀에게 꿀물이나 설탕물을 먹이는 여성들의 정성에도 마찬가지 생활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민이 설탕을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지만 흔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 처음 공장이 생겨 설탕이나 사탕이 널리 보급됐으니 그 이전에는 엿이 최고의 단 음식이었다. 19세기 서울에는 엿과 사탕을 파는 백당전이 여러 곳에 있었으며 목판을 메고 다니면서 엿을 파는 아이들의 모습도 흔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어린 엿장수도 엿을 팔아 집안의 생계를 보탰으리라.
엿 중에는 울릉도 호박엿, 개성 밤엿, 강원도 평창의 옥수수엿, 광주 백당, 제주 닭엿 등이 유명하다. 빙허각 이 씨의 '규합총서'에 나오는 광주 백당(흰엿) 만드는 법을 읽어 보자.
'쌀 한 말을 씻고 또 씻어 밥을 지어 막 익으면 엿기름 가루 한 되 반을 더운 물 세 병에 풀어 밥에 섞는다. 솥뚜껑을 덮고 겻불을 피워 솥 밑이 더울 만큼 해서 반나절 정도 두면 밥이 다 삭아 물이 된다. 고운 베자루에 녹말 내듯 하여 도로 솥에 붓고 다시 겻불로 뭉근하게 솥 밑이 차지 않도록 고면 호박빛이 된다. 실깨를 넣으면 검은 엿이 되고 쇠못을 한 간 사이에 마주 박고 서로 걸어 힘껏 당기면 켜가 많이 생겨 눈빛 같고 단단한 흰엿이 된다.'
엿을 켤 때 두 사람이 서로 잡고 국수를 빼듯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엿빛이 희어진다. 큰일을 치를 때 엿이 노르스름한 집은 살림 사는 아낙에게 흉이 됐다. 엿 고고 켜기를 소홀히 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흔히 울릉도 호박엿에 호박을 넣고, 개성 밤엿에 밤을 넣어 고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울릉도 호박엿은 그 빛깔이 유난히 호박(琥珀) 빛깔이 나서 얻은 이름이다. 개성 밤엿은 엿을 잘라 밤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엿이 가진 당분에다 다른 영양소를 더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 엿강정이다. 콩이나 깨, 잣, 흑임자 등을 볶아서 엿으로 뭉친 것으로 식물의 씨앗과 열매에 담긴 온갖 영양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는 영양식품이다.
엿강정은 엿의 진득한 맛과 당분, 씨앗과 열매의 씹는 맛과 영양분을 한꺼번에 먹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조상들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든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참고:우리 음식 백 가지,
한국인의 식생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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