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조연

세계인의 눈이 남아공으로 집중된 2010년 6, 7월은 전 인류의 축제였다. 지름 20㎝ 남짓한 공을 따라 우리의 눈도 선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목이 터져라 열광을 하고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기도 하며 축제기간 내내 우리는 행복했다. 그리고 16강 진출이라는 소기의 목표도 달성했다.

축구 경기를 할 때는 각 선수에게 배치된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다. 극적인 순간에 공을 차 넣는 골잡이가 있는가 하면 공을 몰고 경기장을 누비며 골잡이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조력자가 있다. 공을 골인시켰을 때 그 영광은 온통 골잡이에게로 돌아간다. 빛나는 골잡이, 그 그늘에 함께 땀 흘린 어시스트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말없이 제 역할을 해내는 많은 어시스트들, 엄밀히 따지면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경기의 승패는 팀워크다. 조화로운 팀워크는 최후 목표인 승리에 이어진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마음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행동으로 나타난다. 어느 자리에서든 두드러지게 우뚝 서서 좌중을 이끌어 가는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자리를 지키며 제 몫에 충실한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자리가 다를 뿐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얽히고설킨 그 어울림 안에서 세상은 돌아가고 역사는 이루어진다.

집안의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옆에서 오른손 역할을 해준 동서가 있다. 언제나 내 옆을 지키며 때로는 나를 능가하는 일솜씨를 발휘한다. 두 사람은 손이 척척 맞는다. 일이 끝나고 나면 인사는 온통 맏이인 내 차지가 된다. 나는 당연히 내가 받을 찬사인 줄 알고 한 번도 그녀와 그것을 나누어 본 적이 없다.

혼자 빛나는 별이 있는가. 역사에 길이 남은 성군(聖君) 세종대왕의 업적을 보더라도 그렇다. 높은 이상을 지닌 군주와 천하의 명재상 황희, 훌륭한 집현전 학자들, 과학자 장영실 등 많은 조연들과의 합작품이 세종의 실적이다. 조연이 유능하면 주연의 웬만한 결점은 묻혀 나간다. 역할에 따라 주연을 더욱 돋보이게도 한다.

지난 며칠간 우리는 우울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서다. 말 뒤집기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쭈뼛거리는 후보자를 보는 것도, 한 사람의 사생활을 들추어 흠집을 내며 혼자 청렴한 듯 기고만장한 질문자를 보는 것도 국민들에게는 고통이었다. 능력과 도덕성을 한 저울에 올려놓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인재 운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임금의 오른팔, 진정한 조연, 이 시대의 황희는 어디에 있는가.

수필가 박헬레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