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배수 후보자 모의청문회…자녀 사생활도 캐묻는다

"제2 김태호 막아야"…靑 인사검증시스템 개선

9일 청와대가 발표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시스템 개선안은 '제2의 김태호·신재민·이재훈'을 막아야 된다는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추석 전후로 예정된 후임 개편에서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경우 그 파장은 민심 이반과 조기 권력 누수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후보자 정밀 검증=이번 개선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 인사추천위가 실시하는 약식 청문이다. 본고사인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예비고사를 치러 후보자들을 정밀 검증하는 한편 후보자들의 '맷집'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청와대 인사라인 관계자들에 따르면 3배수 이내에 든 최종 후보자 모의청문회를 주도할 인사추천위원회엔 위원장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정무·민정수석과 공직기강비서관 등 10명이 참여한다. 질문 수위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의 '인연'을 생각해 적당히 넘어갔다가는 감당 못할 후폭풍을 대통령이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논란이 된 후보자들은 문제가 불거진 뒤 "정말 몰랐다"는 식의 해명만 내놓아 검증 담당자들을 당혹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유력 후보들로부터만 받던 '자기검증서'를 검증 초기 단계에서 모든 예비후보들로부터 받아 검증하고, 자기검증서 항목을 기존 150여 개에서 200개로 늘린 점 역시 '제대로 걸러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기조인 '공정한 사회' 구현에 걸맞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200개 항목은 9개 분야로 나뉜다. 민심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질문이 40개로 가장 많다. 뒤를 이어 직무윤리(33개), 사생활(31개), 납세의무(26개), 전과 및 징계(20개), 연구 윤리(15개), 병역의무(14개), 학력 및 경력(12개) 등의 순이다.

◆사생활까지도 미리 검증=특히 새로 추가된 문항들은 본인은 물론 배우자, 자녀들까지 대상으로 해 사생활의 작은 부분까지 혹독할 정도로 캐묻는 내용이다. 여권으로선 뼈아팠던 지난 8·8개각 청문회의 영향이다. 앞으로 고위 공직자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인사라면 반드시 숙지하고 철저히 관리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위장전입 관련 질문을 더 구체화했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원인이었던 '쪽방촌 투자'를 염두에 둔 '재개발 재건축 예정 지역 부동산을 구입한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자녀들이 증여세 면제 한도를 넘는 금융자산을 보유해서 세금 탈루 의혹이 제기됐던 것과 관련, '미성년 혹은 무소득 자녀가 고액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질문도 추가됐다. 본인과 가족이 사용한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영수증 등의 사용액이 총소득의 10%보다 낮은 적이 있는지도 묻는다.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논란이 제기됐던 부분이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기업체에서 리스 차량을 지원받아 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서 리스 차량 및 렌터카 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도 포함됐다. 이 밖에 자녀의 특급호텔 결혼과 백화점 및 호텔 VIP회원 가입 여부, 해외 부동산과 수입차량 보유 여부도 질문 대상이다.

◆의심나면 현장 검증=청와대가 이번 개편안 발표에서 스스로 밝혔듯 짧은 시간 안에 한정된 인원으로 후보들을 완벽하게 검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검증 절차가 서류 중심의 요식 행위란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앞으로는 자기검증서를 통해 제출받은 답변들을 꼼꼼히 살펴본 뒤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현장에서 관련 사실을 직접 검증하고 주변인들의 진술도 일일이 확인키로 했다. 예를 들어 농지 투기 의혹을 부인하는 고위직 후보자가 있다면 인근 농민, 부동산 중개업자 등으로부터 완벽한 확인을 받은 뒤에야 사실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청와대 인사검증위원회는 민정수석이 위원장을 맡지만 현장 조사의 경우 인력 부족을 고려해 검찰·경찰 등 외부 감찰기관이 협조해 실시한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9일 국회 운영위원회 답변에서 "(이번 인사 논란에는) 시스템 문제도 상당히 있었다고 평가하고, 질적 검증은 이를 보완하겠다는 의미"라며 "시스템 개선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없다는 데 공감하며, 인사 종사자나 인사권자 모두 냉철한 기준을 갖고 인사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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