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동서(同壻)

"한집안에 며느리가 한 사람만 있으면 평안할까?"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다음 주 글감은 '첫사랑의 추억'입니다.

♥"영원한 평행선밖에 될 수 없나"

명절이 가까워 온다. 올해 명절 분위기는 지난해보다 좀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앞서서인지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어머님과 시누이가 주방에서 하는 말을 우연찮게 듣고는 일 년 내내 찝찝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아들, 아들 해봤자 아들 덕 본 일도 없응께 자고로 며느리는 한집안에 하나만 있으면 되는 기다.' 어머님이 방문을 쾅 닫고 나가셨지만 그 충격으로 문틈이 벌어졌는데 바깥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남자들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서로 양보하며 잘 지내는데(자기들은 형제니까), 형님(손위 동서)과 나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데 그건 양보가 아니라 서로 할 일을 미루고 있다는 거다.

나는 '형님이 있는데 내가 왜?' 하는 마음이 앞섰고, 형님은 '만날 왜 맏며느리만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반기를 든다는 게 어머님 말씀의 요지다. 막내인 시누이가 척척 장단을 맞춰주는데 그녀 역시 남의 집 둘째며느리인 걸 어떡하랴?

명절날이 되면 이런 증세가 더욱더 심하다. 여자들만의 '증세'라고 하다가 이제는 '병세가 깊어졌다'고 표현하는 남편은 비꼬는 언어로 마구 꼬집어댔다. 결혼이란 제도로 참말로 어려운 관계를 형성하고 겨우 유지해가는 것 같다.

용돈 많이 드리면 잘하는 것일까? 시댁 일을 머슴같이 하면 칭찬 들을 수 있을까? 참 어렵다. 형님도, 나도 30여 년을 살다온 '우리 집'을 떠나와 또 다른 '우리 집'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면 좋을 텐데! 영원한 평행선인 것만 같다.

그래서 어머님은 며느리는 한집에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하셨을 테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로 엉키는 선보다 평행선으로 쭉쭉 잘 뻗어나갑니다. 다가오는 올 명절엔 제가 먼저 팔 걷어붙이고 음식 준비할게요.

문권숙(대구 북구 국우동)

♥"빨리 일어나 처갓집에 놀러가세"

이 사람 동서! 눈을 떴으면 다음엔 말도 하고 일어나서 걸음마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에 왔다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 말고 뭐 그리 바빠서 중단하려 하는가?

작년 11월 15일 일요일 아침은 맑았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테니스 시합을 위해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간 동서가 쓰러져서 정신을 놓은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니! 동서가 눈 감고 못 들은 체하고 있는 열 달 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지 아는가? 자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딸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네. 딸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아들은 의경 전역하고 복학을 했다네. 하지만 아직은 어리기만 한 자녀들이 아닌가? 아버지를 끌어안고 옷자락을 적시다가 아버지가 힘들까봐 기쁘게 해드려야 빨리 회복한다며 재미있는 얘기로 분위기를 바꿔주는 이질들이 너무 안쓰러워 목이 메어 온다네. 자네의 처 또한 건강 체질이 아니지만 체력을 다해 버텨가며 온 가족이 자네를 위해 지극 정성을 기울이며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길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네.

동서의 부모님도 누워있는 자식을 보고 있는 가슴이 얼마나 타겠는가! 자네가 쓰러지기 며칠 전, 막내 동생의 이사 진급을 위해 갓바위 부처님께 빌었다고 어머님께 말했다며? 장남이니까 인내해야 하고, 장남이니까 효도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잊었는가? 그 지극스런 효성과 남다른 우애로 부모, 형제, 처, 자식과 동고동락하며 이 세상에 아름다운 그림 더 많이 그려놓고 미련 없는 발자취를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동서가 그랬지? 처갓집에 오면 동서들이 술을 먹을 줄 몰라 재미가 없다고 했던 그 말이 지금은 생토란을 먹은 듯 가슴이 아려 온다네. 어서 일어나, 그동안 하지 못한 맥주잔 기울이며 오징어 다리 씹으면서 늘어나는 백발의 자연에 순응하며 스쳐가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발자국 함께 찍어가세!

할 일이 많이 남은 동서의 건강 회복을 위해 파이팅!

김학구(대구 남구 대명동)

♥형부에게 반말 듣는 아내와 말다툼

동서와의 관계가 좋으면 친형제만큼이나 가깝게 지낼 수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내와 나의 나이 차이는 10년.

처형과 동서는 동기동창이라 동갑내기고 결혼 전 처가댁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친구였으니 자연히 나의 아내에게도 선배로서 말을 낮추었다. 나는 열세 살이나 어린 처제에게 깍듯이 예대를 하는데도 말이다. 처가에 어른들이 다 모인 자리라서 꾹꾹 눌러 참다가 집에 와서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어떻게 했기에 너의 형부가 함부로 반말을 하노?" "뭐? 형부야 나 어릴 때부터 반말하고 지냈는데, 새삼스럽게…." "그래도 내 마누라에게 반말하는 거 듣기 싫다. 처갓집에 오면 처가 법을 따라야지!" "내가 괜찮으면 되는 거지 뭘 그래?" "학교 선배라서 반말을 할라치면 동서보다 내가 여덟 살이나 많은데 그럼 사회 선배니까 내가 반말해도 되겠네?" 이렇게 우겨댔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관계는 떨떠름해졌다.

서로 만나면 불편하기만 하고 호칭도 없이 저기, 거기, 저어로 일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지내고 있었다. 내가 아내에게 호칭 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면 할수록 아내가 힘들어하며 차라리 친정 나들이를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만 손해였다. 음식 솜씨 좋은 장모님의 김치, 마늘지, 온갖 장아찌를 동서들이 다 갖다 먹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못 이긴 척 아내를 따라나섰다. 언젠가 장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네 나이만 생각하지 말고 젊은 아내를 데리고 사는 걸 먼저 생각해보게…." 듣고 보니 백번 맞는 말씀이었다. 나이 많은 게 자랑도 아닌데 나 혼자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나기만 하면 '하하 호호' 하는 아내의 일곱 형제자매들의 우애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 역시 처음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이 무척 좋은 사람이다.

시댁의 여자 동서보다 더 잘 지내게 된 처가의 동서(同壻)에 대해 오늘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비록 나이는 적지만 아내 형제자매의 서열에 맞게 동서는 손위답게 잘 해가고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이런 것일까?

양일룡(대구 달서구 용산동)

♥"언니라 생각하고 잘 지내요"

나이 많은 도련님이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주말 새 식구 맞을 준비를 위해 그동안 미루어 놨던 도배도 하고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를 했다. 점심 무렵, 쑥스러워하는 도련님 뒤에서 젊음의 싱싱함이 묻어나는 한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과 과일 등을 접대하면서 나의 동서가 될 아가씨의 여기저기를 슬쩍슬쩍 봐가면서 점검했다. 연약해 보이는 몸매는 밥을 좀 많이 먹어야 힘을 쓸 듯한데 저러다 도련님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연방 아가씨 쪽을 보면서 싱긋싱긋 웃는 도련님을 보니 아가씨가 예뻐 보였다.

"앞으로 언니라 생각하고 잘 지내요"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도련님은 결혼을 했고 아가씨는 내 동서가 되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동서는 내게 고백했다. 언니가 없던 동서는 결혼하면 형님이 언니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처음 만났던 날, 내가 언니처럼 지내자고 한 말이 너무 듣기 좋았다고. 지금도 동서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 보거나 가끔 신랑 흉도 보면서 전화를 한다. 동생처럼 귀여운 행동을 하는 동서를 보면서 내가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지 생각해 본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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