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네마다 있던 '도장 파는 집' 기술계승 끊어질 판

직장인 이성우(45·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최근 아파트 매매에 필요한 인감도장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졌다. 몇 년 동안 도장을 사용하지 않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5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인감도장을 사용한 이후 다시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관공서에서 문서를 떼거나 은행 거래 할 때 도장을 많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장 쓸 일이 없다. 2시간 동안 서랍이며 장롱을 구석구석 뒤진 끝에 겨우 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도장이다. 작은 물건이지만 사람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증표로 널리 사용돼 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도장은 서서히 잊혀지는 존재가 됐다. 도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도장을 새기는 인장업소도 찾기가 힘들어졌다. 국새제작단장이 원천 기술도 없이 정부와 계약해 국새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도장 제작 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개인이 사용하는 도장에 대한 흥미는 여전히 싸늘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인장업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했다.

◆과거

1970, 80년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도장 수요도 늘어 인장업은 호황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동네마다 하나 이상의 인장업소가 있었다. 한국인장업연합회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1천 명이 넘는 인장업자들이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으며 업소 규모는 대개 3~6㎡ 남짓으로 작았지만 벌이는 쏠쏠했다고 한다. 적게 벌어도 요즘 시세로 한달에 200만~3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렸다는 것. 솜씨 좋다고 알려지면 한달에 500만원 이상 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1천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인장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40여 년 동안 대구에서 인장업을 해 온 한 인장업자는 "지금은 종업원을 둘 형편이 되지 않지만 1970, 80년대에는 6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을 했다. 벌이도 좋아 당시 귀한 아파트도 사고 자가용을 굴리며 풍족한 생활을 했다. 도장 기술 하나로 자식 셋을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고 말했다.

인장업에 대한 인기도 좋았다. 한 인장업자는 "현재 최고 직업으로 꼽히는 공무원보다 인장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한달에 도장 20개 정도만 파면 공무원 월급과 맞먹는 수입이 생겼기 때문이다"고 회상했다.

◆현재

법원·구청·시청 앞 등 도장 수요가 살아 있는 특정 지역이 아니면 인장업소 찾기가 힘들어졌다. 현재 대구경북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전문 인장업자는 300~400여 명으로 전성기에 비해 60~70% 감소했다.

인장업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고 도장 날인을 사인으로 대체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도장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 게다가 1999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인장업법이 폐지되고 도장 파는 기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기술 없이도 인장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보호막 역할을 했던 진입장벽이 사라지면서 전문 인장업자들의 설 땅은 더욱 좁아졌다. 일일이 손으로 파야 하는 손 도장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계 도장은 가격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많은 전문 인장업자들이 폐업하거나 전업했다.

30여 년간 인장업을 해온 김모(61) 씨는 3년 전 폐업한 뒤 군위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가게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수입이 줄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천직으로 알고 도장을 파 왔는데 그만두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골 출신이라 농사가 가장 만만해 보여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술이 사라지고 있다

인장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줄어든 것보다 인장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더 염려스럽다고 말한다. 그동안 수작업을 고집해 오던 전문 인장업자들이 점점 기계 도장으로 바꾸거나 인장업계를 떠나고 있지만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장업연합회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대구에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장을 새기는 인장업자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혜성문화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노태(63·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손 도장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인장업자 중 한 사람이다. 손 도장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수소문을 해서라도 그의 가게를 찾을 정도로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김범일 대구시장의 직인도 김 씨가 제작한 것이다.

김 씨가 44년 외길을 걸어오면서 손 도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인장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네모 또는 원형의 틀 안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인장업자의 개성과 혼을 담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것.

김 씨는 "손 도장과 기계 도장의 가치는 천양지차다. 손 도장은 위·변조가 어렵다. 같은 글씨를 같은 사람이 새기더라도 그 날의 감정 상태, 칼끝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글자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 도장은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기계 도장은 획일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온갖 심부름을 다하고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인장 기술을 배웠다. 가르쳐 주겠다고 사정을 해도 배울 사람이 없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작업 인장인들의 기술이 계승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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