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9월 1일은 방재의 날이다.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 대지진에 연유한 것이다. 그날은 정확히 입춘에서 210일째의 절기에 해당돼 태풍이 오기 쉬운 시기이다. 자연 재해에 대한 경각심과 방재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 1960년에 제정되었다.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는 이날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여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신학기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들떠 있는 한편, 지진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기도 하다.
관동 대지진은 일본의 재해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가져왔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만도 약 10만 5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진에 의한 화재로 도쿄 전 지역의 약 3분의 2가 불탔다. 일본에서 역사상 사망자가 10만 명이 넘는 참사는 3번 있었는데 전부 도쿄였다. 1657년의 에도(江戶'옛 동경) 대화재, 관동 대지진, 1945년 2차대전 말기의 도쿄 대공습 등이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앞으로 30년 안에 동경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70%라고 한다. 또 관동 지역에는 약 70년의 주기로 대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에, 도쿄에 언제 지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어릴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밤잠을 설쳤다. 머리맡에 과자, 인형, 반창고 등을 가득 채운 배낭을 준비해 둔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지진이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밤중에 지진이 나면 "지금 졸리니까 좀 있다가 보자"며 그대로 자버릴 만큼 익숙해졌다.
일본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지진, 천둥(벼락), 화재, 친아버지이며, 그 가운데 특히 지진이 제일 무서운 것이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의 생활이 일본인에게 독특한 감성과 국민성을 키워온지도 모른다. 이전에 한국인 친구로부터 "일본인은 부자도 저축만 하고, 토끼집 같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계면쩍게 웃은 적이 있다. 실제로 의식주를 비교해도 절약이 몸에 밴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여유가 있고 풍요롭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줄타기와 같은 불안 속에서 일본인에게 저축은 생명과 같다. 만약의 경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비축해 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처음 갔을 때, 고층 아파트가 많은 데 우선 놀랐다.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는 한국의 풍경은 매우 근대적으로 보였다. 일본에는 지진이 많은 탓에 단독주택이나 2, 3층의 저층 아파트가 많다. 또 한국의 건축 속도에 놀랐다. 장난감 나무 쌓기를 하듯 빠르게 올라가는 아파트의 높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완성된 아파트의 결함투성이를 보고 또 놀랐다. 실제로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비가 오면 집안까지 물이 들어오고, 욕실 문짝은 아구가 맞지 않았다. 한국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내가 사는 아파트는 무너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야기현(宮城縣)에서 며칠 전 규모 4의 지진이 있었다. 그때 나는 교내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면서 비상구가 닫히고 나는 계단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당황해서 비상구를 열려다 손가락이 끼였다. 손가락 상처와 함께 공포를 느꼈다. 겨우 연구실로 돌아가니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문을 열어 놓고 태연히 대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나에게 과자를 건네주었다. 일본인 주제에 지진에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하늘에 띠구름이 생기거나, 동물이 날뛰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지진의 전조라고 한다. 마음을 다잡고 있어도 평소와 다른 현상이 생기면 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불안을 느낀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일본 대부분의 가정은 비상식량과 물을 준비해 둔다. 그러나 이것은 위안일 뿐이다.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도 먼 옛날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인은 오늘도 저축을 하러 은행으로 간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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