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환자실 세균감염 1년에 3천여건, 보고는 '쉬쉬'

'슈퍼박테리아 사망'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에 9명이 감염돼 사망하자 국내 보건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6일 오후 계명대 의대 미생물학 세균배양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슈퍼박테리아를 배양시킨 후 항생제 내성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이웃나라 일본에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에 9명이 감염돼 사망하자 국내 보건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6일 오후 계명대 의대 미생물학 세균배양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슈퍼박테리아를 배양시킨 후 항생제 내성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슈퍼박테리아 공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병원 내 집단감염으로 인해 슈퍼박테리아로 숨진 환자가 15명으로 늘었다. 유럽에서 150여 명의 목숨을 빼앗은 슈퍼박테리아 사망자가 이웃 일본에서도 발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 생긴 다른 슈퍼박테리아가 영국에 이어 캐나다에서도 발견되는 등 확산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WHO는 홈페이지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항생제가 거의 듣지 않는 신종 박테리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각국 정부, 병원, 제약업계, 국제기구 등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슈퍼박테리아의 역사

1928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20세기 의학계 최대의 성과물 중 하나로 꼽히는 항생제 '페니실린'을 우연히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결핵이 퇴치 직전까지 간 것도 페니실린 덕분이었다. 인류는 세균(박테리아)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이런 자신감 속에 1960년대 한 의사는 '10년 이내에 모든 감염병은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균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페니실린 상용화 이후 일년도 채 안된 1946년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진 돌연변이 세균이 등장했다. 1961년 영국에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첫 보고됐고, 1996년 일본에서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던 반코마이신에도 반 정도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VISA)이 출현했다. 언론을 이를 '강력한 박테리아'라는 의미에서 '슈퍼박테리아'로 불렀다. 2000년대 초반 아예 반코마이신이 듣지 않는 포도상구균(VRSA)이 나타났다. VRSA는 면역력이 약해진 인체에 들어 올 경우 온갖 감염을 심화시키며, 현존하는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아 결국 피가 썩는 패혈증을 유발해 생명을 위협하는 초강력 세균이다.

이 밖에 반코마이신 내성 장내균(VRE), 다제내성 녹농균(MRPA)이 있고, 일본에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MRAB), 인도에서 첫 출현해 영국, 미국, 일본으로 확산되면서 공포감을 일으키는 뉴델리형(NDM-1) 카바페넴 내성 장내균(CRE) 등도 대부분 항생제에 듣지않는 슈퍼박테리아들이다.

◆내성을 지닌 이유

항생제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증을 치료하는 약물인데, 자주 사용하면 병원균이 항생제에 스스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즉 내성이 점점 커지면서 어떤 강력한 항생제에도 저항할 수 있는 일종의 변종 박테리아가 생겨나기도 한다.

박테리아가 슈퍼박테리아로 변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먼저 항생제가 박테리아 세포 안으로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박테리아 세포막에 있는 수백 개 단백질은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한다. 이들 '통로 단백질'을 통해 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한다. 항생제도 이 통로로 박테리아 안에 침투한다. 그러나 아시네토박터균은 특정 항생제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다. 결국 항생제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 다른 박테리아의 '내성 유전자'를 넘겨받아 슈퍼박테리아로 변하기도 한다. 박테리아 세포 안에는 '플라스미드'라는 고리 모양의 유전자(DNA)가 있는데, 이를 이용해 박테리아끼리 유전자를 주고받는다.

박테리아는 다른 박테리아를 보호해주는 성질도 지니고 있다. 최근 미국 보스턴대와 하버드대 연구진은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이미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대장균이 보호물질인 '인돌'(indole)을 내보내 다른 박테리아를 도와준다"고 발표했다. 내성이 있는 박테리아에서 배출된 인돌은 다른 박테리아의 약물펌프를 작동시켜 내부로 침투한 항생제를 밖으로 배출하게 도와준다.

◆슈퍼박테리아 vs 다제내성 박테리아

일본에서 발생한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망사고와 관련, 질병관리본부는 "일본에서 발견된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MRAB)은 슈퍼박테리아가 아니다"고 밝혔다. MRAB는 치료가 가능하므로 슈퍼박테리아로 볼 수 없으며, 국내에서도 내성균으로 관리대상에 포함된 균이라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슈퍼박테리아는 어떤 항생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균"이라며 "현재까지 항생제로 치료되지 않는 균으로 알려진 카바페넴 내성 장내균(CRE) 중 NMD-1 형은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슈퍼박테리아는 강력한 내성으로 어떤 항생제에도 저항할 수 있는 균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 여러 항생제(다제·多劑)에 견딜 수 있는 내성(耐性)을 지닌 균은 있어도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는 없다는 것.

인도에서 발현해 확산되고 있는 '뉴델리형 카바페넴 내성 장내균'(NDM-1)도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약효가 없을 뿐 이 균주에 감수성을 갖고 치료가 가능한 항생제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사망자를 낸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내성도는 NDM-1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역시 치료 가능한 항생제가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감염내과 류성열 교수는 "일본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및 사망사고는 엄밀하게 보면 기존에 알려져 있고 치료가 됐던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획득한 경우이고, 치료 가능한 항생제가 존재하므로 다제내성균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내 위험은 없나

이번에 일본에서 46명이나 MRAB에 걸린 것은 병원 측이 수개월 전에 발견한 내성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내성균이 나타나면 다른 환자들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격리 조치를 해야 하지만 일본에서 이 조치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감염사고는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와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가 전국 57개 종합병원 중환자실을 대상으로 병원 감염률을 수집·분석한 결과,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일 년간 세균 감염 3천287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계에서는 슈퍼박테리아로 감염자가 사망해도 단순한 세균성 폐렴 등으로 사망원인을 기록하기 때문에 슈퍼박테리아가 공식적인 사망원인으로 집계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항생제 사용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발생 비율이 높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되는 부분이나 아직 정확한 발생률이 보고되지는 않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슈퍼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증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한의학회의 국제학술지 7월호에는 국내 한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환자 57명을 조사한 결과 19명(35.8%)에게서 MRAB가 검출됐고 이 중 4명이 이 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논문이 실렸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은 "아시네토박터균은 항생제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진 균 가운데 독성이 가장 약하다. 사망에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이 만성질환 때문인지, 아시네토박터균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감염내과 권현희 교수는 "아시네토박터균은 인공호흡기, 중심정맥관 등 침습적인 치료가 많이 이루어지는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발생이 보고되고 있는 세균으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며 "아시네토박터균은 10년 전까지만 하더라고 감염의 원인균으로 관심초자 받지 못했던 균이었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에 의한 폐렴, 균혈증, 수술부위 창상 감염 등이 발생하고 있고,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법정 감염병 지정된 슈퍼박테리아

1. VRSA (Vancomyc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

2. MRSA (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

3. VRE (Vancomycin Resistant Enterococcus) - 반코마이신 내성 장내균

4. CRE (Carbapenem Resistant Enterococcus) - 카바페넴 내성 장내균

5. MRAB (Multi-drug Resistant Acinetobacter Baumanii) -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

6. MRPA (Multi-drug Resistant Pseudomonas Aeruginosa) - 다제내성 녹농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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