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지맥은 앞서 봤듯 용각산서 유천까지 이어가는 매우 긴 산줄기다. 서편 청도읍과 동편 매전면을 나누는 본맥 길이만도 22㎞에 달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산줄기가 아니다. 거대한 권역, 별도의 산권(山圈)을 이끄는 특별한 산줄기다.
그 산권엔 700m 넘는 봉우리가 1개, 600m대 봉우리가 22개, 500m대 봉우리가 36개나 솟았다. 물론 각각 독립된 산덩이를 형성하는 건 아니지만 산세가 어떠할지는 짐작하게 할 자료다. 최고봉(729m)은 조산(祖山)인 용각산보다 36m 더 높다.
저 봉우리들을 꿰는 중추능선은 용각산(693m)~곰티재(285m)~장돌봉(579m, 효양산능선 분기봉)~625m봉(비룡산능선 분기봉)~시루봉(679m, 용당산능선 분기봉)~작은고개(547m)~종지봉(646m)~큰고개(565m)~함박등(679m)~족두리산(729m, 지소능선 분기점)~대호암바위(637m·아래족둘바위)~큰고개(416m·건티)~532m봉~당고개(512m)~문바위봉(594m)~양지넘(재·443m)~594m봉~사기점고개(473m)~오례산성~501m봉~노루목(40m)~127m봉으로 이어진다. 용각산~곰티재~장돌봉 5㎞(바닥거리), 장돌봉~족두리산 4㎞, 족두리산~오례산성 6.5㎞, 산성~501m봉 2.2㎞, 501m봉 이하 유천까지 3.8㎞ 정도다.
이 노정 첫 지표인 '곰티재'는 동창천-청도천 유역을 잇는 여러 고개 중 가장 북쪽 것이다. 예부터 '熊峙'(웅치)라 표기하며 주목했고 지금은 자동차도로가 난 유일한 고개다.
유천지맥은 곰티재를 지난 뒤 동쪽으로 향하면서 청도읍 쇠실마을(부야1리) 북편 담장이 된다. 그 들머리 구간 아래가 '곰티골'이고, 거기서 올라서면 475m봉이며 이후 420m재로 잠깐 떨어졌다가 160여m 치솟아 579m봉에 오른다. 475m봉~579m봉 사이 등성이는 '살매등'이라 불렸다.
이 구간을 자세히 살펴두는 것은, 지금과 달리 옛 곰티잿길이 바로 거길 통과했기 때문이다. 걸어 넘던 옛날 소로는 곰티골을 오르내리도록 나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국도 20호선 초기 신작로는 쇠실마을 안을 통과했다. 지금의 마을 진입로로 들어서서는 골 끝에서 좌회전해 곰티골을 감아 돈 뒤 더 서편의 '각골'을 거쳐 곰티재에 이르도록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길은 지금도 선명하며, 곰티재 소공원서 올라도 금방 흔적을 볼 수 있다.
유천지맥이 살매등을 거쳐 올라서는 579m봉은, 청도읍서 우회도로를 타고 곰티재 쪽으로 향할 때 정면으로 가장 크게 보이는 그 산덩이다. 정상부가 밭 몇 마지기 크기는 되지 않을까 싶게 평평 널찍한 그 봉우리 정점 삼각점 표석 옆에 누군가 '중산봉'이라 쓴 리본을 달아 놨다. 하지만 쇠실마을 어르신은 이 봉우리를 '장돌배기'라 불렀다. 그것의 마을 쪽 비탈이 너덜을 복판에 두고 노루발처럼 둘로 갈라져 있어 생긴 이름인가 싶다. '장돌'은 '노루발장도리'의 준말이다. '장돌봉' 정도로 표기하면 될 듯하다.
유천지맥 산권(山圈) 첫 봉우리인 저 장돌봉을 거친 뒤, 산줄기는 주향을 남쪽으로 바꿔 쇠실마을의 동편 담장 역할을 하며 1㎞ 남짓 진행한다. 이 구간의 동쪽엔 매전면 용산리 안중산마을이 있다가 지금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저 구간 최저점은 505m, 최고점은 521m다. 그 521m봉서는 쇠실마을 쪽으로 등성이가 하나 내려서니, 그걸 어르신들은 '질등'이라 불렀다. 그 위로 난 산길을 통해 쇠실과 안중산마을이 이어졌었다고 했다.
유천지맥은 골프장 권역이 끝나는 해발 520m쯤 되는 지점에 이를 때 '가마실마을'(부야1리)의 동편 담장으로 변한다. 그 변환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지릉이 쇠실마을과의 경계선이다. 지릉 끝은 국도(20호)서 가마실마을로 들어설 때 만나는 정자 쉼터다. 거기엔 시그널들이 매달려 등산 들머리임을 알리고 있다.
저 변환점 이후 3.5㎞에 걸쳐 계속되는 가마실 동편 구간은 유천지맥 중에서도 가장 높고 현란하다. 625m봉~시루봉(679m)~작은고개(547m)~종지봉(646m)~큰고개(565m)~함박등(679m)~족두리산(729m·최고봉)~대호암바위(637m·아랫족둘바위) 사이 대단한 지형들이 모두 거기 속했다.
변환점과 그 다음 첫 봉우리인 625m봉 사이 높이 차는 100m다. 10분이면 오른다. 경사도가 보통 수준이라는 뜻이다. 625m봉과 그 다음의 634m봉도 그 자체로 특별한 지형이 아니다. 그 뒤에 오를 '시루봉'으로 가기 위한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데도 625m봉을 각별히 주목해 두는 것은, 앞서 본 골프장 공간과 그 남쪽 '대곡지' 골을 가르는 비룡산(684m)능선 출발점이어서다.
'시루봉'은 한 산덩이에 679m-678m-679m짜리 세 봉우리가 솟은 모양새다. 뇌두 3개를 가진 인삼 같다고 할까. 625m봉서 15분이면 닿는 첫 679m봉은 정상부가 상당히 넓고 남쪽 동창천 건너의 운문분맥이 잘 보이는 전망대다. 다시 3분 거리의 678m봉은 북쪽 조망이 뛰어난 돌출 암봉이다. 청도 남산과 읍내는 물론 멀리 경산이 한눈에 보인다. 비슬산~삼성산~팔조령~용각산~선의산~대왕산 사이 비슬기맥 흐름이 일목요연하다. 삼각점과 '시루봉'이라는 예쁜 나무푯말이 거기 가설된 연유도 이것일 터이다.
저 암봉과 1분 거리인 세 번째 679m봉은 뾰족하게 솟지 않아 그냥 등성이 같고 전망도 별로다. 하지만 그곳은 용당산(596m) 가는 능선 분기점이다. 지맥 흐름으로 봐선 더 중요한 셈이다.
이렇게 구성된 '시루봉'은 인근 마을서 매우 중시하는 봉우리다. 특히 가마실마을서는 옛날 가물 때 그 아래 '큰골'서 무지(기우제)를 지낸 뒤 연기를 피워 올리러 오르던 봉우리라 했다.
시루봉 남쪽에는 매전면 용산리 용당골 '사고개마을'이 있다. 시루봉서 15분여 만에 내려서는 '작은고개'가 이 마을을 가마실과 잇는 통로다. 그래서 작은고개는 '가매실고개'로도 불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남쪽에 있는 '큰고개'(565m)를 훨씬 많이 이용했다고 했다. '작은고개'서 20여 분 애써 646m봉으로 올라섰다가 5분여 걸려 내려서는 재다. 그리 넘고 가마실마을 쪽 '오리밭골'을 가로지른 뒤 '제비실골'을 통해 청도읍을 내왕했다는 것이다. 재 넘을 사람이 거의 없어진 지금도 경운기 길은 유지되고 있으며, 전기선로도 거길 통과하고 있었다.
작은고개와 큰고개 사이의 저 646m봉은 부야리 주봉인가 여기기 십상일 정도로 뚜렷하다. 마을 쪽으로 유독 튀어나왔을 뿐 아니라 고깔 모양으로 엄청 돌출해 보인다. 가마실은 물론이고 인접 제비실서도 마찬가지다. 그 정점을 제비실서는 '종지만댕이'라 지칭했다. '종지봉'이라 정리하면 될 것 같다. 거기서 내려서는 산줄기에 '자라등' 등등의 산등이 있다고 했다.
'큰고개'(565m)는 이 종지봉과 다음의 679m봉 사이에 좁고 깊게 파인 잘록이다. 청도읍 우회도로서 봐 정면 산줄기 중 가장 널찍하게 파여 보이는 곳이 큰고개이고, 그 왼편 봉우리는 종지봉이다. 679m봉은 큰고개서 15분 고생해야 오른다. 등성이가 매우 넓고 펑퍼짐한 이걸 사고개마을서는 '함박등'이라 불렀다. 시루봉이 그 마을 뒷산이라면 이건 서산인 형세다.
유천지맥 최고봉인 729m봉은 함박등서 불과 10분이면 닿는다. 그 정상은 크게 넓지 않으나 헬기장 하나 터는 될 듯하다. 바닥 밑이 암괴여서 소나무만 몇 그루 섰을 뿐 훤히 틔었다. 200도 가까이 두루 조망되니 시루봉보다 낫다.
거기서 남동쪽으로는 매전면 지전리 지소(紙所)마을까지 내려 뻗는 '지소능선'이 출발한다. 북편 용당골과 남쪽 송원리(松元里) 계곡을 가르는 능선이다. 이 산줄기의 가세로 729m봉 주변은 북서쪽 가마실, 북동쪽 사고개, 남쪽 송원리 세 권역으로 나뉜다.
어렵게 찾아낸 729m봉의 이름은 '족둘바위'였다. 그 남쪽 '윗건태'마을 출신 어르신들이 특히 명백히 그 이름으로 지칭했다. 북편 쇠실 및 가마실 마을이나 서편 제비실마을에서도 여든 넘은 어르신들은 같은 이름을 잘 기억했다. 729m봉 정상부 바닥의 암괴가 족두리처럼 둥그렇게 생겼다는 것이다. '족두리산'이라 불러두면 될 듯싶었다.
그런데도 729m봉 정상에는 누군가가 '대남바위산'이라고 알리는 표지를 붙여 놨다. 부산의 어느 신문이 등산코스를 안내하며 퍼뜨린 이름이라고 했다. 유천지맥 산권 첫 봉우리인 '장돌봉'을 '중산봉'이라고 소문낸 주체도 그것이었다. 우리 전래 지명이 등산객들 탓에 또 다른 위험에 직면했음을 일깨우는 사례다.
'대남바위'에 유사한 이름을 가진 건 유천지맥이 '족두리산'을 지나 하강하다 잠깐 모아 쌓는 637m 암봉(岩峰)이다. 제비실마을에 매우 중요한 지형이어서 할머니들까지 그 바위를 잘 알았다. 옛날 바깥어른들이 '무지'(기우제)를 지낼 때 안어른들은 거기 올라 '양밥'(비방)을 했다고 했다. 이 암봉도 윗건태 출신 어르신들은 '족둘바위'라 했다. 더 동그랗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729m봉은 '윗족둘바위', 이건 '아랫족둘바위'로 구분했다.
반면 제비실마을서는 637m봉을 '대우나무바위'라 불렀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명칭에는 자신없어했다. 스스로도 '대우나무'라는 말이 수상하게 느껴져서인 듯했다. 그런 애매함을 타고 인근 마을서는 '남쪽에 있는 큰 바위'로 풀이해 자의적으로 '대남바위'라 바꿔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발음을 거슬러 추정할 때 그 본딧말은 '대운암바위' 비슷한 무엇이 아닐까 생각됐다. 그 암괴가 그런 이름으로 불렸거나 그런 이름을 가진 암자가 그 아래 있었다면 가능할 일이다. 거기서 '대우나무바위'로 바뀌는 것은 어렵잖을 터이다.
제비실마을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다만 그 본딧말이 '대호암(大虎岩)바위'일 것으로 보는 것만 차이였다. 앉아있는 큰 호랑이 형상일 뿐 아니라 그 아래에 '범굴'도 있어 예부터 그렇게 봐 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대혼암바위' '대혼아무바위' '대호나무바위' '대우나무바위'로 변전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옛 윗건태마을 자리 서편에 있는 또 다른 '큰고개'(건티·건태)서 보면 '대호암'은 족두리산서 내려서는 경사면에 매어놓은 배 같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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