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사이기 때문에

경북대학교에 새 총장님이 취임하셨다. 오랜만에 의대 교수님이 총장에 선출되어선지 평교수인 나에게까지 비서실에서 취임식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행사 당일은 새벽부터 태풍 때문에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다행히 행사 전에 태풍은 잦아들었다. 식장에서 안면 있는 분들과 주섬주섬 인사를 주고받는데 내빈들의 축사가 들렸다.

어떤 분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조직의 관리도 잘한다"고 하였고, 또 다른 분은 "참모들에게 이야기할 때 종종 업무처리는 의사가 환자를 보듯이 하라고 한다"면서 체계적이고 면밀히 하라는 뜻이라고 부언을 하였다. 물론 총장님이 의사이기 때문에 축하의 뜻을 담은 칭송의 말씀들이었지만 하객에 불과한 나도 덩달아서 감사하고 황송하였다.

그런데 문득 사람은 칭찬을 들을 때 가장 약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겁이 덜컥 나면서 오히려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흔히 듣는 말 중에 "의사는 환자의 통증에는 무심하다"는 것이 있다. 병의 진단과 치료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과정에서 겪는 환자의 통증은 괘념치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잘 낫게 해 주고 있으니 아픈 것쯤은 조금 참으세요'라는 생각에서 얼마나 자주 진통제 처방에 인색하였던가? 그 후 나 자신도 환자가 되어 뼈저리게 느꼈던 통증을 지금도 걸핏하면 잊어버리는 것은 태만인가 아니면 남의 것이기 때문인가?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혹시 일상생활에서도 과정보다는 결과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환자들의 설문조사를 보면 '좋아하는 의사'의 1등이 '말을 잘 해주는 의사'가 아니라 '말을 잘 들어주는 의사'다. 거꾸로 비추어 보면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자기 말만 하고 환자들의 말은 잘 안 듣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소위 전문직종이 비전문인을 대할 때 갖는 고질적인 병폐인 '권위적 자만심'을 내 환자들도 나에게서 느끼는가?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직업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 적은 없는가?

서양 속담에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혹시 내 손에는 메스가 쥐어져 있다 보니 약으로 치료해도 될 것을 수술한 적은 없는지? 내가 외과의사다 보니 수술이 최선이라는 맹신을 하고 수술실 밖에서의 일처리도 그렇게 한 적은 없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덧 행사도 끝나가고 있었다. 막바지에 교수회 의장님의 건배사가 인상에 남았다. "태풍을 몰고 오신 총장님이 질풍노도와 같이 학교를 발전시켜 주십시오." 밖으로 나오니 이미 비가 그쳐 있었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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