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의도시 대구-동네우물 되살리기]2부)밖에서 길을 찾다-프랑스⑧

72가지 프로그램 가진 에비앙 물치료소 130여년 전통 자랑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호. 요트 천지인 레만호에서 분수가 힘차게 솟아 오른다. 제네바는 제법 큰 도시임에도 레만호를 더럽히지 않는다.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호. 요트 천지인 레만호에서 분수가 힘차게 솟아 오른다. 제네바는 제법 큰 도시임에도 레만호를 더럽히지 않는다.
에비앙 물치료센터의 물치료사. 그들은 안마와 운동 등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다.
에비앙 물치료센터의 물치료사. 그들은 안마와 운동 등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다.
빙하와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샤모니 계곡. 왼쪽 첫 건물이 대구 팔공산악회가 묵었던 곳이라 한다.
빙하와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샤모니 계곡. 왼쪽 첫 건물이 대구 팔공산악회가 묵었던 곳이라 한다.
에비앙 물치료소에서 바라본 레만호. 한폭의 그림같다.
에비앙 물치료소에서 바라본 레만호. 한폭의 그림같다.

프랑스 에비앙시가 자랑하는 3가지는 레만호를 낀 알프스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에비앙 생수, 그리고 물치료센터다. 물치료소는 1868년 설립돼 허리디스크와 소화기 계통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프랑스 상류층에 입 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관절염 환자들도 많이 찾게 됐다. 당시 물치료소가 3개로 늘었다. 지금의 현대적인 물치료센터는 1984년 새 단장했다.

◆72종 물치료법=물치료 방식은 비시의 물치료센터와 다르지 않다. 주치의의 진단서를 받아 물치료센터 의사에게 제시하면 마사지, 운동 등 어떤 방식을 적용해 치료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채소가 위주인 식이요법도 병행한다. 물치료 이외에 원기 회복을 위한 3~5일 프로그램도 있다. 이용자는 대부분 55~80세의 장·노년층. 점심 시간을 이용한 미용 프로그램은 20, 30대 젊은이들이 애용한다.

이곳 물치료센터는 72가지 치료 방법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은 물의 온도까지 의사가 정해줄 정도로 세밀하다. 물 치료는 그러나 보조적 치료수단일 뿐이다. 이 때문에 어떤 병에 어떤 치료가 좋은지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의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프랑스 물치료협회(AFRETH)가 매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를 봤다는 발표를 해서 '준공인'을 한다. 에비앙의 경우 2년 전 관절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준공인을 받았다고 한다.

파리에서는 매년 6월에 물치료 경연 대회를 연다. 전 세계의 물치료 방법이 이 경연 대회에 소개된다. 에비앙 물치료센터도 매번 여기에 참여한다. 물치료 권위자인 크리스티안 호크 박사가 에비앙 물이 몸 속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물치료센터는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아 경제적이지 못하다. 연인원 2만1천 명으론 2개 층으로 된 드넓은 시설의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 에비앙시는 에비앙이 생수와 물치료소로 유명해진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 물치료센터에 각종 지원을 한다. 경제성보다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알피니즘의 발상지 몽블랑=잠시 짬을 내 1시간 거리의 샤모니(Chamonix)로 향했다. 에비앙 물의 시작 가운데 하나인 몽블랑(Mont-Blanc)의 만년설과 빙하를 보기 위해서다. 4,807m 높이의 몽블랑은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다. 이탈리아에서는 몽블랑을 몬테비앙코(Monte Bianco)라고 부른다. 만년필 몽블랑에는 4,810m라 표기돼 있는데 그동안 3m가 깎였나?

해발 1,035m의 고원지대 샤모니로 가는 길은 '아 정말 알프스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빙하가 흘러 내리면서 만든 빙식 지형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수직으로 떡 버티고 있는 석회암 벽, 깊은 낭떠러지 밑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 특히 석회암벽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리는 작은 폭포들이 경이롭다. 어떻게 저런 곳에 폭포가 만들어질까 싶지만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굽이치든 뚫고 나가든 흘러내려야 하는 게 물이다.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 샤모니는 눈의 나라였다. 사시사철 스키를 둘러멘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는 몽블랑이 바로 눈 앞에 솟아 있으니 스키 천국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케이블카를 타고 몽블랑에 올랐으나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찬데다 눈까지 심하게 날려 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하산했다. 손발만 꽁꽁 얼고, 본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었다. 동행한 중국 암웨이 관광객단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기분까지 잡쳤다. 잣나무 전나무가 흰눈으로 염색한 듯 눈(雪)을 이고 장관을 펼쳐내 그나마 눈(目)이 위안을 얻었다.

샤모니의 유일한 한국 식당인 산마루에서 김치찌개 맛을 보고 구경했다. 산마루는 대구의 팔공산악회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운영한다. 샤모니엔 계곡물이 회색이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석회암 지대를 흐르니 회색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물도 차다. 샤모니 계곡은 꼴 데 발마(Col de Balme)에서 꼴 데 보자(Col de Voza)까지 23㎞에 걸쳐 길게 누워 있다.

◆평화의 땅 제네바=마지막 취재지인 일본 구마모토(熊本)로 가기 위해 에비앙을 떠나 제네바에 잠시 들렀다. 취리히와 바젤에 이은 스위스 제3의 도시인 제네바는 영세중립국의 도시답게 평화롭게 느껴졌다. 레만호의 풍광이 에비앙에서 볼 때와 또 다르다. 300m 이상 치솟는 분수가 한강 분수와 똑 같다. 아마도 한강 분수가 레만 분수의 짝퉁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개운치 않다.

레만호의 물은 바닥까지 휜히 비치는 게 에비앙 쪽보다 더 맑아 보인다. 1만 명도 안 되는 인구의 작은 마을인 에비앙의 레만호가 맑은 것은 이해되는데 18만 명 가까이 사는 제법 큰 도시인 제네바 쪽 레만호도 그처럼 맑다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맑은 레만호를 위한 제네바의 노력에 대한 경외심에서다.

제네바는 론강으로 나뉘어진다. 론빙하에서 발원해 레만호로 흘러들고, 레만호에서 다시 흘러나가 쥐라산맥 협곡을 거쳐 지중해로 이어지는 810㎞에 이르는 그 강이다. 론강은 루아르강보다 길지 않으나 수량은 프랑스 강 중에 가장 풍부하다. 길지 않은 일정에 센강, 루아르강, 론강 등 프랑스 3대 강을 모두 구경해 대구 동네우물되살리기팀은 '운이 좋다'며 행복해했다.

◆물에 맛?='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중국 스님 야보의 시구 '山是山(산시산) 水是水(수시수) 佛在何處(불재하처)'를 입적한 성철 스님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물은 물일 뿐인데 물에도 맛이 있을까? 만약 물의 맛이 어떠냐란 질문을 받으면 그냥 물맛이라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물이 아니라면 그 맛까지 구분할 미각을 가진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구 동네우물되살리기팀은 취재 여행 도중 버릇이 생겼다. 어느 지역을 가나 그곳에서 파는 생수를 죄다 사서 맛보는 버릇이다. 물론 독일에서는 맥주, 프랑스에서는 와인도 즐겼으나 물을 더 많이 더 자주 마셨다. 프랑스의 비텔 꽁뜨레 헤파르 에비앙, 스위스의 바살… 그리고 그 생수에 표기돼 있는 미네랄 양을 기록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수를 계속 마시다 보니 혀가 물맛을 구분했다. 물맛은 시원하다 미지근하다 등 온도로 차이를 느끼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부드럽다 거칠다 등 경도(硬度)는 물론 달다, 싱겁다 등 물의 미세한 맛 차이까지 혀가 알아차렸다. 신기한 일이다.

◆일본으로=이제 일본이다. '물의 도시' 구마모토. 아소산과 구마모토성, 온천과 골프장이 유명해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 일행은 시라카와강(白川江) 과 그 수원지 등지에서 구마모토가 '물의 도시'라 자랑하는 근거를 찾아야 한다.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이유와 방법 또한 알아내야 한다. 상수도 400년 역사에서 우리의 상수도 정책이 지금 모양대로 된 까닭까지 알게 된다면 더 없이 좋다. 대구가 동네우물을 되살려야 하는 필연성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는 일이다.

글·사진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