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하는 것이 곧 마음 닦는 것이지"

영천 청통 묘적암 성인 스님

▲묘적암의 성인 스님은 일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다.
▲묘적암의 성인 스님은 일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님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불경, 법문, 참선이다. 한편으로 절에서 논밭을 일구는 스님을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예'보다는 '아니오'가 많을게다.

일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이후 근·현대 이전만해도 스님들은 손수 논밭을 일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그래서 '옛날 스님'을 만나러 팔공산으로 향했다.

영천 은해사 거조암 가는 길 중간, 정확히 청통면 애련리 뒷산 정상 부근에 조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다. 묘적암이다. 워낙 골이 깊고 험해 승용차로는 접근할 수 없고, 1시간 이상 급경사 길을 올라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묘적암은 사찰치곤 너무나 소박했다. 아담하다고나 할까. 30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방 3칸 짜리 낡은 건물에 부처님을 모신 옛 그대로의 암자다. 묘적암 아랫마을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큰 사찰이 있었고 묘적암은 당시 큰스님의 선방이었다고 한다.

묘적암은 워낙 골이 깊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또 암자의 세간살이라고는 이불과 옷가지, 불교서적, 수저 등만이 눈에 띄었다. 묘적암의 성인 스님(스님은 주지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은 '옛날 스님'이다. 13년째 문명의 이기가 단절되다시피한 암자를 지키고 있다. 스님은 승랍 32년이다. 묘적암에 오기 전에는 여러 사찰의 주지도 맡았다. 하지만 번잡한 사찰과 사람이 싫어, 부처님의 곁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깊은 산속 묘적암에 왔다. "공찰의 소임을 맡다보면 번뇌가 쌓이고, 뒤늦게야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

13년 전 묘적암은 폐찰이었다. 스님은 묘적암에 오자마자 맨손으로 묘적암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의 주요 사찰처럼 번쩍하게 중창한 것이 아니라 몸을 의지할 정도의 수준만큼만 낡은 건물을 고쳤다. 돈으로 불사를 한 흔적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암자 주변은 거의가 밭이다. 밭도 평지가 아닌 가파른 산비탈 밭이다. 스님은 혼자서 산비탈을 개간했고, 최근에야 행자 한 명을 둬 밭농사를 같이 짓고 있었다. "일하지 않은 사람(스님)은 먹지도 말아야 돼. 일하는 곳이 도량이요, 일하는 것이 부처님을 모시는 길이지." 스님은 13년 동안의 일과를 노트 5권에 빽빽히 적었다. 13년 수행을 적은 '산중일기'였다.

스님에게 하루 일과를 물었다. "예불과 두 끼 밥을 제외하곤 일만 해. 일이 곧 수행이야." 전기도 궁금했다. "전기가 있으면 사람이 번잡해져. 절에는 정신차리기 위해 오고, 마음을 닦는 곳인데 전기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뺏곤 하지."

조심스레 절에 대해 쓴소리를 부탁했더니 잠시 묵상 뒤 "절이 자꾸 세속화되고 있어. 절이나 스님은 그 형상이 어떠하든 신비감이 있어야 하고, 특히 물질을 경계해야 해"라고 했다.

묘적암은 요즘 찾는 이들이 있다. 등산하는 이들이 호기심으로 찾은 것이 입소문으로 퍼져서다. "오지말라고 할수도 없고···. 그 참."

사진 촬영에 손사레를 하는 스님에게 겨우 뒷모습 촬영만 허락 받고 암자를 내려 왔다. 스님은 어깨에 삽을 걸치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뒤 밭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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