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10진법

바쁘게 동동 걸음을 했던 하루를 내려놓으며 허리춤에 매달린 만보계를 들여다본다. 20층 계단걷기, 집안일과 수업, 장보기, 저녁에 학교 운동장 열 바퀴 돌기한 성적이 '6527'이라니…. 나름대로 걷는다고 했건만 만보 달성은 요원했다.

한 달 전쯤 공직에 계셨던 지인을 만났다. 세월을 거꾸로 사시는 듯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참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심스레 "육십대로 보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며 여쭸더니 "물을 썩지 않게 하려거든 둑을 터라"고 했다. "그럼 둑을 틀 방법을 알려주셔야지요?"라는 물음에 "건강을 챙기려고 나름대로 수년간 해 온 방법인데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너무 쉽다"고 답하셨다. "10진법인데 첫째 하루 한 번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가지 하기, 둘째 하루 열 번 이상 웃기, 셋째 하루 백 자 쓰기, 넷째 하루 천 자 읽기, 다섯째 하루 만 보 걷기. 어때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안 한다는 게 문제지요."

냉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하루 한 가지 좋은 일 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골목에 무심히 버려진 쓰레기 줍기도 해 보았고, 손 내미는 걸인에게 단돈 천원이라도 선뜻 기분 좋게 주게 돼요. 요즘은 나도 디스크 환자라 허리가 불편하지만 결막염 걸린 친구를 병원에도 데리고 다니며 수족처럼 챙겨주고 있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흐뭇하고 보람있어요. 그리고 하루에 열 번 웃는 건 말이요. 웃을 일 없어도 억지로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일어나요. 그 참 신기해요. 하하하…. 백 자 쓰기와 천 자 읽기는 별 문제가 안 되는데 만 보 걷기가 쉬우면서도 잘 안 돼요. 그러나 만 보를 채우려고 자동차도 멀리하게 되고 될 수 있으면 걷다 보니 밥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신경성 위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나았어요. 지금은 소화가 너무 잘돼서 속도 편하고 잠을 잘 자니 몸이 가벼워서 날아갈 듯 산뜻한 게 아주 좋아요. 서 시인도 한 번 해 보세요?" "몇 년 동안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일 거요"라며 구순을 바라보는 그분은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했다.

사뮤엘 스마일스는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고 말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아 보면 어떨까.

서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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