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신언서판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중국 당나라 때 관리 등용 시험의 인물 평가 기준이었다.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따르면 관리는 풍채가 늠름해야 하고, 말을 정직하게 해야 하며, 글씨를 잘 써야 하고, 문리에 익숙해야 했다.

신언서판은 평가 잣대의 중요도 순이 아니라 아마도 평가 순서일 것이다. 중요도 순으로 나열한다면 당연히 판서언신이 돼야 할 게다. 그런데도 신수(身手)와 언변(言辯)을 문필과 판단력보다 앞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할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서판(書判)보다 신언(身言)을 앞세운 것으로 보인다.

신언서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인사 평가 기준이다. 취직 시험을 앞두고 성형을 하거나 면접 대비 특강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세태이니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그러나 신언서판만으론 어려운 취업 관문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력이 뛰어나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하면 괜찮은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공무원, 그 중에서도 외교관이 되려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부모나 친족 중에 장관이나 대사급이 포진한 권문세가(權門勢家)가 아니면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는 사실이 최근 행정안전부의 외교통상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

외교부의 특채 파동 불똥이 행정안전부로 번졌다. 행정고시 출신 공채를 줄이는 대신 민간 전문가를 특채하는 등의 채용 선진화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행안부는 곁불에 밥을 익힌 탓인지 이번 외교부의 특채 파문을 내심 즐기는 눈치다. 각 부처가 나눠 갖고 있는 특채 권한을 가져오고, 특채 박람회를 주관하는 등 정부 부처 인사권을 일정 부분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그런데 신언서판 앞에 세가(勢家)까지 등장해 버티고 있으니 만사가 아니라 망사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 조직뿐 아니라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인사 시스템 개혁은 관료화 조직을 업무형 조직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세가부터 쳐내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고선 인사 개혁은 나무에 올라 낚싯대를 드리우는 격이 될 것이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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