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밀양 신공항

얼마 전 지인들과의 저녁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기자 외에 공무원과 자영업자, 중견기업 간부 등 '소속군'도 다양했다. 몇 잔의 술이 오갔고, '밀양 신공항' 문제가 최고의 안주로 올랐다.

기자는 신공항은 대구경북과 울산경남 등 2천만 명이 머리를 맞대 올인하고 있고, 또한 지역의 백년대계라는 점에서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이내 기자의 가슴은 씁쓸함이 차지해 버렸다. 공무원은 "대구와 김해에 2개의 국제공항이 있는데 굳이 신공항을 만들 필요가 있나. 세월이 지나면 신공항은 지역 이기주의의 산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견기업 간부는 "대구와 김해공항을 이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신공항은 남도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고 입을 보탰다. 자영업자는 아예 "관심없다"며 화제를 바꾸자고까지 했다. 무관심에다 지극히 현실에만 안주하는 우물안 개구리적 발상에 밀양 신공항 유치를 열변한 기자는 입만 버린 꼴이 됐다.

'2천 만의 염원, 밀양 신공항'에 지역의 온 신경이 쏠려 있다. 언론들은 연일 밀양 신공항 유치를 톱 기사로 다루고 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시장과 도지사가 직접 나서 신공항 유치를 진두지휘하고 있고, 경남과 울산의 단체장들과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경제계도 서울을 오가며 신공항 유치 논리를 설명하고, 이를 토론회와 심포지엄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다. 공무원과 자영업자, 중견기업 간부들이 먼저 밀양 신공항 유치에 열변을 토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행정, 정'재계, 언론계가 신공항 유치에 발벗고 나선 상황에서) 왜 그렇지 않는걸까?

어쩌면 겉은 화려한데 속은 차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밑바닥 민심이 밀양 신공항 유치에 생각보단 애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일게다.

모임에서의 '잡론'으로만 치부하기엔 찝찝함이 영 가시지 않는다. 밀양 신공항 건설이 왜 객관적으로 그 입지가 타당하고, 지역 이기주의 및 정치 논리와 무관한 지 그리고 지역의 백년대계라는 인식이 아직 밑바닥을 적시지 않은 것 같다. 또한 행정과 언론, 정'재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가 생각보단 탄탄하지 않을 수 있고, 유치라는 '전략'을 앞세운 나머지 밑바닥 민심까지 훑는 세밀한 '전술'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기자협회 일로 광주전남 기자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졌다. 양 지역의 기자들이 만나면 으레 서로 지역 사정을 묻곤 한다. 여러 번의 자리에서 광주전남 기자는 바뀌어도 대답은 일맥이었다. "광주와 전남은 지역 현안 문제가 있으면 언론과 행정, 정'재계가 서로 머리를 맞댄다. 한편으론 지역 현안에 관심이 소홀한 기관, 단체 등에 대해선 민심이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지역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극대화하는 광주전남의 전략과 전술이 늘 부러웠던 반면 대구경북의 사정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는 말로 대신해야 하는 기자가 초라했다.

밀양 신공항 유치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유치 결정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현 시점에서 행정과 언론, 정재계 등 유치 주도층의 치밀한 협력체계 재점검과 동시에 밑바닥 민심이 수면 위에서 마음대로 활개칠 이유와 그 자리도 확실히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돌다리를 한 번 더 두드리고 가자. 순풍(협력체계)에 돛(민심)까지 탄탄하게 달면 배는 반드시 순항하지 않겠는가.

이종규(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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