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선 첨삭지도 어렵고, 변변한 논술학원도 없어요"

지역 高3들 '논술 上京'…담당교사 부족 강사 고용 체계적 교육법 이

대구 수성구의 고교 3학년 이모(18·문과) 군은 요즘 매주 토요일에 KTX를 타고 서울 대치동 학원가로 올라가 6시간씩 논술 특강을 듣고 내려온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이 군의 '논술 상경(上京)'은 대구에서는 논술을 배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진학진도는 정시 위주로 짜여 있는 데다 지방에서는 변변한 논술 학원마저도 없는 탓이다. 이 군은 "(저도) 나름대로 교내 최상위급에 속하는데, 학원에서 따로 뽑아 게시하는 모범답안에 딱 한 번 선정됐다. 학원생 상당수가 외고 학생들인데 그 아이들의 답안을 보면 절망적일 정도로 수준차가 크다"고 허탈해했다.

◆지방에는 대입 논술이 없다?

대구의 한 고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서울대 특기자 전형에 도전했던 재수생 김모(19) 군. 김 군은 지난해 심층면접과 논술 준비를 위해 서울 대치동을 향했다.

"대구에서 학원도 다녀보고 그룹과외도 해봤지만 대치동 논술 강의가 훨씬 체계적인 것 같습니다. 강사들의 노하우도 뛰어난 것 같고요. 방값과 잡비까지 몇백만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지방 학생들의 '논술 따라 강남가기'가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것은 지방에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수성구 A고교는 지난해부터 방학때마다 10회(30시간) 분량의 교내 논술 특강을 열고 있다. 외부 강사를 고용해 문과 논술반 2개반(60명)을 맡기고 있다. A고 교사는 "논술은 첨삭이 중요한데 한 반에 30명씩 모아놓고 제대로 되겠느냐"며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성구의 B고교는 3학년 30명으로 1개 논술반을 운영 중이다. B고 교사는 "논술 담당 교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서로 답안지를 바꿔 검토하는 상호첨삭을 하고 있다"며 "솔직히 교사들도 헷갈린다. 논술 교사 연수회에 나가봐도 사례발표만 있을 뿐, 체계적인 교육법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고교의 3학년 교사는 "교내 논술특강반을 조직하려고 해도 논술은 3학년 교사들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통합교과형 논술에 필수적인 팀 티칭(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 2명이 함께 수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학교에선 매년 3월 발표되는 대학별 논술가이드라인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대응은 꿈도 못 꾼 채 시중에 나온 기출문제집 풀이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넓어진 수시門, 논술 안 하면 낭패

대입 수시 논술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지방의 논술 교육은 무방비 상태다. 주요 대학들은 2011학년도 입시에서 논술 반영 비율을 80~100%(우선선발)까지 높이는 추세다.

840명을 논술우수자 전형으로 뽑는 중앙대는 2011학년도 수시 일반 전형(2차)의 논술 반영 비율을 지난해 60%에서 70%로 올렸다. 올해 신설된 우선 선발 전형에서는 논술로만 학생을 선발한다.

중앙대 입학처 관계자는 "결국 논술 전형으로 뽑은 입학생들이 가장 우수하다는 게 각 대학들의 공통된 분석"이라며 "이 때문에 대학들마다 논술 전형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성균관대 역시 올해 논술 전형에서 논술 반영 비율을 60%에서 70%로 올렸다.

연세대는 2011학년도 일반 전형(1천150명) 중 70%를 뽑는 우선선발에서 논술 80%·학생부 20%를 반영하고 있다. 고려대는 일반 전형(1천436명) 중 50%를 뽑는 우선선발에서 논술 100%를 반영한다. 이화여대도 수시 일반전형(600명)의 절반을 뽑는 우선선발에서 논술 80%·학생부 20%를 반영한다.

이화여대 입학처 관계자는 "600명 모집에 지난해 수시 때는 9천800명이 지원했는데 올해는 1만5천여 명이 지원해 수시 지원자 수가 급증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논술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의 수시 입학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일부에선 논술 전형에서도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결국은 수능 성적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결국 '정시 올인'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 대학 관계자는 "결국 비슷한 성적을 가진 학생들간의 비교이기 때문에 논술로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며 "논술 중심 전형에서는 뒤처지는 학생부 등급을 논술로 만회한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런 논술 강화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재 중3학생이 고3이 되는 2014학년도 이후 수능은 자격고사화되고, 내신은 절대평가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각 대학들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논술 등 대학별 고사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해법은?

공교육 논술 활성화를 위해선 체계적인 시스템이 관건이다.

한준희(경명여고) 대구통합논술지원단장은 "지방 학생들이 논술 준비를 위해 서울 대치동을 찾는 것은 일종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며 "대구의 각 고교들이 최소한 1학년 때부터 적극적인 논술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원경 시교육청 장학관은 "논술은 하나의 대입 전형이기 이전에 사고력을 길러주는 공부 방법 그 자체"라며 "결국 학교 논술의 활성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학년 때부터 꾸준한 주제 토론 수업, 글쓰기 교육 등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풍토를 교실에서 구현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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