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고졸 은행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신한은행 상무 시절이었던 1983년, 당시 부총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람을 추천하면서 신한은행에 입사시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부총리는 라 회장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었다. 대구은행 재직 시절 부총리는 행장이었고 라 회장은 행장을 수행하던 비서실장이었다. 또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이희건 현 명예회장에게 라 회장을 추천한 사람도 바로 부총리였다. 따지고 보면 라 회장에게 부총리는 후견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 관계라면 그만한 인사 청탁을 하는 쪽도 무리가 아니었고, 청탁받는 쪽도 한번쯤 눈감아 줄 법도 했다.

그러나 라 회장은 부총리의 부탁을 거절했다. 신생 은행이어서 안 그래도 여기저기 인사 청탁이 들어오는데 그런 식으로 다 받아들이다 보면 실력 있는 행원을 몇이나 뽑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부총리의 청탁을 들어주면 다른 청탁을 물리칠 명분이 없다"며 끝내 자신이 모셨던 옛 상관을 민망하게 했다. 당시 부총리는 "라 상무는 참 독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더니 "내 부탁마저 거절할 정도니 은행이 잘될 것"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이임광 저 '신한 파워' 중에서)

이렇듯 신한금융 신화 스토리의 중심에는 라응찬 회장이 있다. 경북 상주 출신인 라 회장은 대구은행을 거쳐 1982년 신한은행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에겐 신한은행 행장에 부임할 때부터 '고졸 행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선린상고 야간부 졸업이 그의 학력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학력과 지위는 무의미했다. 그의 뚝심은 금융계에서도 정평 나 있다. 3번이나 행장을 거쳤다. 3차례의 빅딜, 즉 조흥은행'굿모닝증권 합병'LG카드 인수를 무사히 성사시켰다. 신한금융이 지역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라 회장의 이런 불굴의 스토리 때문이다. 이런 라 회장의 뒤를 이을 사람이 바로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이다.

그런데 지난 2일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소하면서 내홍은 시작됐다. 지난 6년 동안 신한은행장을 맡아왔고,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에 이어 '신한 2인자'로 꼽힌 신 사장의 피소는 금융권을 넘어, 경제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는 말이 새삼 생각나는 시점이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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