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나는 도쿄에서 열린 사막 레이스 일본 참가자 신년회에 초청받았다. 도쿄 시부야의 근사한 러시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20명 가까운 오지 레이스 오타쿠들이 참석했다. 나와 유카코, 미호, 그리고 일본 에이전트 사나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을 꿈꾸는 사람들이라 두 번에 걸친 나의 남극 레이스 정보에 많은 관심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와 유카코, 미호는 온통 우리들이 도전할 333레이스에만 관심이 있었다.
333레이스는 3개월 동안 3개 대륙 3개의 울트라급 대회에 연속으로 참가하는 모험으로 지금까지 안 해 본 방식의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석달간 3개 대륙'3개 울트라 대회
그래서 결정한 첫 번째 대회가 캐나다 225㎞ 다이아몬드 울트라다. 일단 시기적으로 제일 가깝고 처음 해 보는 방식의 대회, 처음 가 보는 캐나다 그리고 신비의 오로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3월에 다이아몬드 울트라 대회에 참가해 영하 40℃의 캐나다 설원에서 6일간 썰매를 끌며 225㎞를 달렸다. 두 번째는 2주 후에 열린 4월의 제주도 100㎞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해 완주했다.
사람은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공부를 통해서일 수도 있고 여행을 통해서일 수도 있고 자기가 결정하기 나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은 333레이스의 마지막을 장식함과 동시에 나의 자그마한 인생 실험 무대였다. '과연 내가 썰매를 끌고 영하 40도에서 달릴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333레이스. 북미-아시아-아프리카로 이어지는 3개월간의 도전은 새로운 목표이기에 처음에는 커다란 장벽같이 다가왔다.
불가능은 없다고 나폴레옹이 말했던가?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보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도전해 보고 화끈하게 내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다. 처음 사하라를 갈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때 사실 나는 더욱 신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가질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그들이 볼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지성, 유카코, 미호 그리고 6명의 또 다른 코리안이 나미브 사막을 만난 건 우기가 끝난 5월 중순이었다. 처음 출발은 '피쉬리버 캐니언'이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계곡이었는데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계곡 깊이가 500m를 넘는다고 했다. 계곡이 얼마나 크고 웅장한지 그 앞에 서 있으면 계곡을 중심으로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작아지면서 계곡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검은 구름 속으로 퍼지는 붉은 놀이 웅장한 계곡과 하나가 되는 순간 대자연 앞에서 언제나 벌거벗은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나미브 사막 레이스에 참가한 걸 환영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간의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해 완주하시고 각자의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주최 측 사장인 메리 가담스의 인사말에 이어 출발이다. "출발!" 소리와 함께 2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일제히 뛰어나간다.
#'습식 찜질방' 기온 탈수 증세
몇 명의 일반 관광객들이 피쉬리버 캐니언 위의 전망대에서 느긋하게 계곡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눈인사를 하며 계곡 속으로 내려갔지만, 그들만의 고요한 세상을 방해하는 우리들이 못마땅한지 아니면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을 처음 보는지 놀란 토끼눈으로 멍하니 바라만 본다.
피쉬리버 캐니언의 입구에서 바라본 세상은 단청을 칠한 커다란 이무기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꾸불꾸불 휘어진 계곡과 저 아래 가는 선으로 보이는 강줄기는 도대체 얼마를 내려가야 저곳에 도착할 수 있을지 도통 깊이가 짐작이 안 간다. 거의 수직으로 이어진 계곡을 내려가니 그곳에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밀가루가 뿌려진 것 같은 하얀 모래사장이 잠시 쉬어가라는 유혹을 하고 있었다. 계곡의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세상은 또 다른 장관이다. 경치 구경도 잠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대회 참가자다. 아쉬움을 가득 품고 또다시 달려가야만 한다.
수시로 이어지는 강 건너기와 모래사장 코스는 은근한 체력 소모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우기가 끝난 5월의 피쉬리버 캐니언은 습도를 가득 머금은 습식 찜질방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계곡에서 습도를 가득 머금은 영상 40도의 더위는 한 순간에 우리의 신체를 마비시킨다. 모든 참가자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터벅터벅 몇 걸음 오르다 쉬고를 반복한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무슨 4,000m 이상의 고산을 오르는 것 같다.
#최악'최고의 난이도 기억 생생
계곡의 위쪽으로 올라가자 물이 말라버린 폭포 구간이 나타난다. 등반 장비도 없는 우리에게 절벽을 기어서 올라가는 코스가 연속으로 주어진다. 때로는 기어서, 때로는 로프를 잡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는 공포감이 저절로 생긴다.
마지막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텐트에 2명의 참가자가 누워 있었다. 둘 다 탈수 증세로 쓰러져 실려왔다는 것이다. 한 여성 참가자의 눈에서는 연방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럴 때면 선수들도 그렇고 운영진도 괜히 미안해진다. 평소 같으면 웃음이 넘칠 체크포인트가 장례식처럼 엄숙하기만 하다.
39㎞, 38㎞, 35㎞, 100㎞의 험악했던 5일간 코스를 마치고 나니 발톱 3개가 죽었다. 오랜만에 물집도 생겨서 아침저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수고가 덤으로 주어졌다.
대회 첫날 일본의 시마가 실종되었다가 다음날 구조가 되는 소동이 있었다. 첫날 계곡을 타고 올라가다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밤에 혼자서 비박을 했다는 것이다.
"시마씨, 몸 괜찮아요?"
"네,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도 혼자서 잘 때는 너무나 무서웠어요."
"첫날 당신이 없어져서 본부가 난리가 났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나요?"
"계곡을 올라가다가 힘들어 하는 사이 일행과 거리가 약간 멀어졌는데 갈림길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정신도 없고 해서 다른 길로 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길을 찾았어요?"
"가도가도 계곡 위로 가는 길이 안 나타나서 이상하다 싶어 다시 돌아가는데 밤이 되었어요. 랜턴을 켜고 길을 찾는데 아무리 가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요?"
"그냥 침낭 덮고 잤죠. 하하하!"
"아이고, 정말 살아 남은 게 다행이네."
다음날 아침에 발견될 때까지 뱀과 전갈, 야생동물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혼자서 비박을 하려니 무서워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는 시마. 그러면서 이제는 텐트에서 안심하고 잘 수 있기에 너무나 행복하다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나미비아 대회는 그 어떤 사막 레이스보다 최악,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대회였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까지 열린 전 세계의 사막 레이스 중에서 최고로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소위 좀 달린다는 사람들이 더위와 탈진으로 인해 눈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나는 처절한 전투 현장이었다.
333레이스를 완성하는 나미비아 레이스. 계곡을 지나 사막을 건너 달렸던 힘들었던 7일간의 레이스. 유지성, 유카코, 미호 사막 3총사는 멀리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따뜻한 햇살 아래 서로에게 다짐했던 333레이스 계획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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