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시적인 좌절감을 맛봤거나 자신을 새롭게 충전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떠나봐야 별수 있겠느냐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누구나 한번쯤 일탈의 꿈을 꾼다. 요즘 정치 뉴스를 접하다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넘어, 아예 대한민국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불평불만론자이거나 선진국을 추종하는 사대주의자일 것이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절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언론계 종사자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져서 하는 소리다. 국민이나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 정치부 기자 시절, 국회의원에게 들은 얘기가 아직도 머리에 맴돈다. "국회에 처음 들어가 보면 크게 놀라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일이 어떻게 그리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놀라게 되고, 또 하나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데 놀라게 됩니다."
물론 10년 전에 나온 얘기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정치부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시대에 따라 형태만 달리할 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서는 노골적인 행태가 거의 사라진 듯하지만 대의(大義)보다는 사욕을 취하고, 국가와 국민보다는 당리당략에 골몰하는 습관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회에서 자행하고 있는 '특별'광역시의 구(區)의회 폐지' 해프닝이 아닐까 싶다. 구의회의 활동상을 조금이라도 엿본 사람이라면 그 기능과 역할에 회의를 갖기 마련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사례가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그런 것도 아니고 뜻을 세워 꿋꿋하게 구의원 직을 수행하시는 분들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구청에서 빚어지는, 구의원의 청탁과 부탁, 이권 개입에 모두가 넌더리를 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구청장은 물론이고 중간 간부들까지 의회에 불러내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있으니 '구의원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올 4월 국회 지방행정체제특위가 '구의회 폐지' '읍'면'동 주민자치회 법인화'를 처리했을때 '웬일인가'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지만 결국에는 14일 여야 합의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밥그릇을 챙기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고 오히려 더 굳건한 연대를 보여줬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독도를 일본에 넘겨 주더라도 기초의원 공천제만큼은 절대 내놓지 않을 것"이라던 시민단체의 비아냥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국회의원들로선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재미난 놀이터로 전락해 버린 마당에 어찌 손해나는 바보 짓을 하겠는가. 지역구에 내려가면 자신들을 '왕'처럼 떠받들어주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지방의원들이 있는데 어찌 이를 버릴 것인가. 선거 때 돈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합법적인 운동원이 하나둘 아닌데 어찌 이를 포기할 것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회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 것이다.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읍'면'동 주민자치회 법인화' 폐지를 당연시하면서 "우리나라는 생활 자치를 구현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니 참으로 밉살스럽다. 국회의원이 제 밥그릇을 챙기면서 국민 수준을 운운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지 않을까. 이럴 때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없는 먼 곳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비록 소귀에 경읽기가 되겠지만, 톨스토이가 했던 이 말을 국회의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육체에 꼭 맞는 옷을 입기보다는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도록 하라."
박병선(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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