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땐 꼭 만났으면…"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기약이 없기에 가슴속 응어리는 더 커진다. '울지 않아야 한다'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붉어진 눈두덩에선 쉼없이 눈물이 솟는다.
"50년간 이사도 안 갔어. 어느 날 불쑥 종원아 하고 어머니가 사립문에 들어설 것 같거든."
이종원(가명·80·대구 중구 남산동) 할아버지는 지난주 임진강에 들러 북녘 고향땅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었다. 개성 개풍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 선언이 있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간발의 차이로 고향땅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북녘 땅이 돼 버린 것.
"일제 치하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온 가족이 만주로 갔었다. 그런데 곧 전쟁이 터졌어." 전쟁 통에 친척을 모셔오기 위해 고향에 들른 게 화근이었다. "큰 형님은 어른들을 돌봐야 했기에 내가 내려갔디. 그런데 그게 생이별이 될 줄이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부모님, 형제들과 헤어졌다. 당시 부모님 연세가 예순이 넘었고 지금 살아계신다 해도 120살 가까이 될 터지만 고인이 되셨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저승꽃이 뭉게뭉게 핀 할아버지와는 달리 꿈속의 부모님은 그 시절 그 모습으로 한결 같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다. "고향땅은 눈앞인데, 이 몸이 새가 되지 않는 이상 무슨 수로 갈건디."
명절만 되면 더 그리운 가족. 이산가족들의 명절은 오히려 더 힘겹다.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면서 혹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감도 생기지만 꿈같은 이야기다.
김기수(가명·80·대구 달서구 장기동) 할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꼭 들르는 데가 있다. 동네 문방구를 찾아 예쁜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산다. '평안남도 용강군 다미면 XXX 7X6번지…' 편지지에 꾹꾹 눌러 부모님 전상서와 함께 전쟁 통에 헤어진 다섯 동생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서다. 반장도 다 채우지 못하고 눈물로 얼룩져 마음으로만 붙이길 50여년. "어디에 살아있다는 소식이라도 듣고 싶은데 이제 틀린 것 같아. 남들은 중국을 통해 소식을 전한다던데… 죽어서나 만나려는지." 6남매 중 장남이었던 할아버지는 고향을 잊지 못해 슬하에도 6남매를 뒀다.
김억동(가명·79·여) 할머니도 북에 남겨둔 혈육을 애타게 찾고 있다. 동생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 이산가족이 됐다. 가족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진지 오래. 행여 잊을까 고향집 주소를 달력 겉표지에 빼곡히 눌러 써 손자 손녀들에게 외우도록 했다. "내 죽어도 자손 대엔 통일이 되지 않겠어."
지난주부턴 꿈에 북녘 가족이 나타나 작은 희망이 생겼다. "이번 추석때 꼭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것 같아. 살아있으면 '왜 그때 못 왔었나' 꼭 물어보고 싶다"는 할머니. "이제 가는 날만 세는데 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남북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면 죽어서도 여한이 없겠어."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7일 정부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북 실무자 회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돼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재 대구에만 75명의 이산가족이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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