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이 언제나 남의 불행을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악의 종말/롤프 데겐 지음/박규호 옮김/현문 미디어 펴냄

옥탑방 살인범 현장검증.
옥탑방 살인범 현장검증.

어린이 성폭행, 묻지마 살인, 무차별 테러 등 반사회적 범죄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세상은 온통 범죄투성이 같고 거리에는 사이코패스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다. 들키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떤 죄악이라도 저지를 것 같다. 확실히 사람은 악한 존재처럼 보인다.

악은 대체 무엇인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악을 연구했고 종교와 교육은 악을 몰아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악의 정체는 규명되지 않았고 그 오랜 세월의 노력에도 척결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악(죄)의 실마리를 원죄에서 찾았고 인간이 어쩌지 못할 초월적인 문제로 떠넘기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진화생물학은 약육강식 이론을 통해 악의 본질을 인정했고 경제학은 영리를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인)를 통해 인간을 논했다. 심리학은 인간을 쾌락만 탐하고 손해를 피하는 이기적인 피조물로 그리기도 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흔해빠져서 일반적인 인식이 됐다. 미국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행복은 타인의 고통을 볼 때 피어난다'고 했고, 극작가 고어 비달은 '성공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실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때 생기는 편안하고 대체로 즐거운 감정을 지칭하는 낱말까지 있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하는데 영국과 미국에서도 이 단어를 그대로 받아서 쓴다.

이처럼 악한 인간이 타인의 불행에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부당한 일을 당할 때 그를 동정하고 자신의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리면서 남을 돕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악한 인간'이 어째서 '선한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일까.

이 책 '악의 종말'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고 친절하고 자비롭다'고 말한다. 선은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지은이 롤프 데겐은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인간의 선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신화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혹은 막연하게 '인간은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볼 때 남이 불행해져야 내가 행복하다는 '샤덴프로이데' 감정은 대체로 타인이 불행을 자초할 만할 일을 했을 때, 불행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 상대를 혐오하거나 시기심을 갖고 있을 때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남의 불행이 언제나 나의 행복'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은이는 진화생물학자, 심리학자, 뇌연구자, 실험경제학자, 동물학자들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려는 욕구는 교육과 종교 등을 통한 사회적 가르침의 산물이 아니며 제거할 수 없는 본능이라고 결론 내린다. 선한 본능은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오래 하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그 싹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도덕적 감정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없는 사이코패스도 물론 있다. 그들은 아무리 엄한 처벌을 가해도 자발적으로 악한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생후 6, 7개월 된 아이들은 낯선 사람, 특히 남자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린 새끼를 죽이는 습성은 동물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낯선 사람-특히 계부'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는 것이다. 이는 적대적인 종족으로부터 빈번한 집단 말살을 경험한 종족들의 뇌 안에 '악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자리매김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군비 경쟁, 악 감지로 선제공격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악한 동시에 선하며, 그 모두는 원래 내재된 것으로 결코 제거할 수 없으며, 악이 승리하는 경우보다 선이 승리하는 경우가 언제나 많다는 것이다. 강도나 마약범들이 부를 쌓기보다 감옥에 갈 가능성이 훨씬 큰 것처럼. 이 말은 결국 인간의 본성은 '선을 추구하며, 선에 더 가깝다'는 말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지은이는 1953년 독일 안데르나흐 출생으로 유럽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독일심리학회로부터 과학저널리즘 상을 받았으며 뇌 연구 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업존-펠로십을 받았다. '심리학 오류사전' '오르가슴'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책을 썼다. 304쪽, 1만3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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