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입 수시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한 고3 정모(18) 군은 학교생활기록부만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정 군은 지난 8월 말 학교에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다른 학교 수험생과 비교해봤더니 자신의 '스펙'(이력)이 너무 빈약했다.
정 군은 "다른 학생의 생활기록부는 전체 분량(페이지 수)에서부터 나보다 많았고 평가 항목마다 기재된 분량도 크게 차이가 났다. 과연 면접관이 내 생활기록부를 보고 좋은 점수를 주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대구 고교들의 'F학점'짜리 학교생활기록부가 학생들의 입시를 망치고 있다.
생활기록부는 자기소개서와 함께 대표적인 대입 전형 서류로, 고교생에게는 3년간의 학교 생활을 집약해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하지만 생활기록부 작성을 담당하는 학교의 무관심 속에 수험생들이 면접 때부터 감점을 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취재진이 대구 일부 재수생들의 생활기록부(사진 참조)를 살펴본 결과, 비슷한 성적(내신)인 학생 가운데서도 출신 고교, 교사의 관심에 따라 그 충실도가 천차만별이었다. 분량도 적게는 5, 6쪽에서 많게는 10쪽까지 차이가 났다.
내신 평균 3등급인 서로 다른 고교 출신의 A군과 B군의 생활기록부는 담임교사가 기록하는 '진로 지도 상황' 항목부터 차이가 났다.
A군의 경우 '1·2학년 때 대학교수를 희망했으나 3학년부터 생명공학 분야에 흥미를 느끼면서 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함. 진로에 대한 열의가 큼'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B군의 경우 3년 내내 '학생의 희망대로 진로 지도함'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영어·수학 등 교과 담임 교사가 기재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항목에선 더 큰 차이가 났다. A군 경우 '(수학 10가) 수학적 사고의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함. 수학 10가, 사회, 과학 총 51시간 심화·보충 이수함. (진로와직업) 직업에 있어서 인간관계와 능력 배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 등 여섯 줄이나 적혀 있었지만, B군 경우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수상 경력' 항목도 학생에 따라 크게 달랐다. 또 다른 재수생인 C군 경우 '2학기 교과우수상, 교내 과학경시대회 은상(물리), 동상(생물)' 등 교내 수상 경력이 열 줄을 넘었지만, D양은 '3년 개근상' 한 개가 고작이었다. 두 학생은 두각을 나타내는 영역은 달랐지만 내신은 비슷했다.
이처럼 생활기록부가 요식 서류에 그치는 데는 학교·교사들의 무관심 탓이 크다. 교사들은 생활기록부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제약이 많다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고3 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제대로 작성하려면 평소 학생의 진로·동아리 활동, 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을 꾸준히 관찰하고 평가를 축적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업 부담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3 교사도 "자기 반도 제대로 평가가 안 되는데 수업을 맡은 다른 3, 4개 반 학생들의 교과 특기사항을 어떻게 적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일부 고교에서는 학기 말에 몰아서 생활기록부를 정리하거나, 아예 암묵적으로 내신 1등급 또는 2등급 이상 학생의 생활기록부 정도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 학생의 개성이나 장점을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그 내용도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고교의 경우 교내 논술대회, 창의성대회, 과학경시대회 등을 일부러 만들어 학생에게 참가 기회를 주고 수상을 못해도 의미 있는 활동으로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등 학교의 성의에 의해 생활기록부는 얼마든지 풍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임진택(경희대 입학사정관) 회장은 "입학사정관제가 현재 정원(수도권 대학 기준)의 20%에서 30%로 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생활기록부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또 "생활기록부는 입시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기록"이라며 "교사들이 생활기록부 작성에 무관심한 것은 스스로의 학생 평가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특히 올해부터 올림피아드 대회 등 교외 시상 내역이나 토플·토익 시험 등 공인 영어 성적을 적을 수 없게 되면서 생활기록부에 더 적을 게 없어졌다"고 답답해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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