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통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무척 낯설게 다가오는 말이다. 생살이 찢어진 것 같은 아픔은 세대를 지나면서 점점 무디어지고, 헤어진 채 살아온 삶에 너나없이 익숙해져 왔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도둑처럼'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민족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너무 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의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를 읽게 되었다.
강만길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분단의 과정을 목격하였고,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민족 분단의 원인과 분단의 고통, 바람직한 통일 방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을 것이다. 역사학자로 살아오면서, 남북대결의 엄혹한 시기를 거쳐 절대로 뚫릴 것 같지 않던 남북관계에도 해빙의 시기가 와서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활짝 웃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여기서 선생은 역사란 더디게 느껴지지만, 기어코 발전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먼저 민족 분단의 원인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반 세기가 넘은 일을 새삼스럽게 따져서 무엇 하느냐고 물을 수 있으나, 선생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통일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분단의 원인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식민지였는데 왜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통일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을까? 독립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뜨겁지 못했고, 민족해방에 평생을 바친 애국자들이 적어서였을까? 민족 해방운동세력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혹은 무장하여 우리 땅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며 해방을 쟁취하였더라면 그토록 벅찬 해방의 기쁨이 민족의 분단이라는 가슴 아픈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터인데. 미국 일본으로 상징되는 해양세력과 중국 소련으로 상징되는 대륙세력이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해방정국에서 우리 민족 지도자들이 하나된 모습으로 현명하게 대처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전쟁의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연합군과 중국군의 참전 때문이며, 이로써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력으로 이겨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남북 상호 간의 합의에 의해 평화롭게 '협상통일'을 달성하는 것만이 지난 20세기에 있었던 역사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같은 핏줄이니까 또 분단 비용이 많이 들어서 통일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7천만 남과 북, 우리 민족구성원 모두가 21세기에 평화롭게 살기 위해, 또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떳떳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사회의 21세기 세계사는 평화주의와 지역협력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7천만 우리 전체 민족구성원들이 20세기의 제국주의 시대와 냉전주의 시대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국토의 지정학적 위치를 21세기에는 반대로 이점으로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대륙세력권과 해양세력권의 어느 쪽에도 포함되거나 치우치지 않으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담보해 내는 몫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이 책을 쓴 2003년과 지금은 남북관계가 또 많이 변화하였다. 남북 간에는 또다시 긴장과 대결 분위기가 가득하고, 우리나라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입김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남북이 21세기 세계의 평화시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왜 이다지도 멀기만 한 걸까? 우리 마음속의 분단의 철조망이 걷힐 날은 언제쯤일까? 노 역사학자의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간곡한 당부의 글을 읽는 내내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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