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별빛과 소금

별빛이 바다로 내려오면 하얀 소금으로 변한다. 증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그렇다. 이곳의 별밤은 너무 영롱하여 황홀하다. 여름밤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리내와 그 비단 폭에 끼지 못한 낱별 들까지 쏟아져 내려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지우지 못한다. 증도에 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섬, 증도에 가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던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구(詩句) 때문은 아니다. 지난봄에 육지와 증도를 이어주는 큰 다리인 증도대교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괜히 몸이 달아올랐다.

##막걸리 잔 앞에 두고 별 보고 싶어…

꼭 어떤 풍경을 보고 무슨 음식을 먹기 위해 그 섬에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민박집 마당의 멍석 위에서 막걸리잔 앞에 두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싶었다. 그동안 별보기에 너무 허기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넷이서 2박 3일 일정으로 출발했다. 목표는 증도였지만 에둘러 가기로 했다. 그것은 톰슨가젤 새끼를 생포한 사자가 단번에 먹어치우지 않고 장난감처럼 데리고 놀다 마지막에 잡아먹는 원리와 같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뒤로 미루 듯 우리도 증도를 한켠으로 밀쳐두었다.

우리 팀의 여행 중 필수식품인 낙지를 사기 위해 첫날 벌교 시장에 들렀다. 낙지철이 지난 탓인지 볼품없는 조그만 것들도 마리 당 만원이었다. 포기하고 강진과 완도 사이에 있는 남창장(2, 7일)으로 달려갔다.

남창장에는 웬만하면 낙지는 물론 감성돔이나 민어 한 두 마리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장 한 바퀴를 돌아 상인들이 자연산이라 우기는 농어 세 마리를 4만원에 샀다.

##여행 중 식사는 직접 만들어 해결

우리는 여행 중에 식당에서 밥을 사 먹지 않는다. 횟감 생선은 현지에서 구입하여 직접 회를 치고 찌개를 끓인다. 경비를 아끼는 최선의 방법이다. 특히 전라도 지방의 국도변에는 정자와 쉼터가 많아 밥 먹을 장소는 골라잡을 수 있다. 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잔디가 좋은 쉼터에서 농어회를 떠서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가 있었다.

우린 노화도와 보길도를 거쳐 첫 밤을 월출산 밑 콘도에서 자기로 했다. 여름 초입이긴 하지만 바닷가 민박집은 부르는 게 값일 것 같아 미리 피신하듯 산속으로 들어오니 값도 싸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특별 대접을 받았다. 방값과 밥값을 줄이면 생선 횟감은 좀 비싼 고급 어종을 선택해도 큰 부담이 가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팀의 노하우다.

피서철 바닷가에는 모든 물가가 비싸다. 특히 섬으로 들어갈 땐 뭍의 어시장에서 횟감을 구입해서 들어가면 반값에 즐길 수 있다.

이튿날 증도로 출발하면서 보길도 전복 전문집에서 7만원에 구입한 전복 1㎏을 삶아 둘러메고 그 섬으로 진군했다.

##과거로 들어가 고전을 읽는 느낌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된 섬답게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안온하고 편안했다. 멀리 보이는 염전의 소금창고는 한 폭의 그림이었고 청보리 들판 사이사이의 집들은 변하지 않은 60년대 고향의 풍경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무안에서 지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가는 길은 과거로 들어가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고전을 읽는 듯한 문학의 길이었다.

마침 증도 우전 해수욕장 백사장에는 천일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길이 470m 나무다리 중간의 물 빠진 도랑에는 짱뚱어들도 축제를 벌이고 있었고 천일염 맨발 체험장과 머드 체험장에는 소년 소녀들의 해맑은 웃음이 푸른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해변도로 옆 정자에 앉아 소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천일염으로 변한 별 가루에 전복을 찍어 한 입 베어 씹어보니 이 풍요 이 행복을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촌로에게 물었다. "여기 민박집 방 한 칸은 얼마쯤 해요?" "돈 십만원은 줘야 할 걸요" 증도의 별밤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서둘러 짐을 챙겼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