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에 잠긴지 20년 넘어도… 늘 고향 그리워"

상주 정착 임하댐 수몰민

임하댐 건설로 20여 년 전 고향 안동을 떠나 상주시 중동면 오상2리에 정착한 주민들이 물속에 잠긴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하댐 건설로 20여 년 전 고향 안동을 떠나 상주시 중동면 오상2리에 정착한 주민들이 물속에 잠긴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동 임하댐 수몰민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상주시 중동면 오상2리. 안동이 고향인 30여 가구가 형제자매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이곳으로 이주해온 지 벌써 21년째. 이젠 잊을 만도 하건만 고향 마을이 눈에 선하다.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절대 잊을 수 없지. 우린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보다 더 못해. 그들은 통일이 되면 돌아갈 고향이나 있지. 우리는 고향이 몽땅 물속으로 사라져 갈 수 없는 곳이 됐지. 늘 이맘때면 가슴이 짠해져." 주민 김상길(75) 씨의 눈가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모두가 고향을 찾아 떠나는 명절 때만 되면 마을 주민들의 가슴은 더욱 아리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이라고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물속에 잠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 짙어지기 때문이다.

1990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댐 주변에 살던 안동 사람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임하면, 길안면, 임동면 3개 면 9개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1차 보상 대상자들은 안동 주변 임동, 수곡, 마령 단지와 구미 선산 일선리 마을에 정착했다. 상주 중동면 오상리에 정착한 30여 가구는 2차 보상 대상자들로 뒤늦게 새롭게 살 곳을 찾아 떠나왔다. 오상리에서는 낙동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고향땅 임하댐에서 내려오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고향 소식이라도 전해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주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숨어있다.

이미 오상2리엔 기존 주민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기에 이주민들은 동네 한쪽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20여 년 전 40대에 이주한 사람들이 이제는 70대 노인이 됐다. 주민들은 이주 당시 낙동강변의 하천부지 3천 평을 농토로 배정받았다. 그나마 이미 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째 하천부지에 농사를 지어오던 터라 100평씩 양보했다. 융자를 받아 새집도 지었다. 겉으로 보기엔 번듯한 생활이었지만 속으론 빚더미였다. 그나마 배정받은 토지는 농업진흥지역이라 벼농사밖에 지을 수 없다.

마을 앞 500년 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수몰민들은 "고작 2천900평의 논에 그나마 벼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데 올해와 내년에는 벼농사를 짓지 못해 생계가 막연하다"고 털어놨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대부분 농토가 농지 리모델링지역에 포함돼 2년 동안 영농보상비를 받아 생활하는 실정이다. 서재석(65) 전 이장은 "보상비가 1년 생활비도 채 안돼 내년쯤엔 손에 남는 것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추석 때 자식들이 집에 올 텐데 음식이라도 변변하게 해줄 것이 없다는 게 주민들이 이구동성이다. "제2의 고향인데 그래도 마음 붙이고 살아야지"라고 말한 후 조완식(65) 이장은 고향에서 흘러내려 오는 낙동강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상주·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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