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초상조각 40여년 외길 최정교씨

입을 꽉 다문 만해 한용운, 눈을 부릅뜬 달마 대사, 온화한 인상의 간디,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이상화 시인….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역사박물관 인근 초가 형태의 황토집. 이곳에는 몽돌자갈이 깔린 마당이 있고, 집안에 20여 점의 위인초상이 전시돼 있다. 인물의 특징을 제대로 묘사한 초상은 하얀 석고 재질에서부터 청동옷이 입혀진 것까지 다양하다.

얼핏 봐도 예사 솜씨가 아닌 이 위인초상들을 만든 이는 최정교(76) 씨. 최 씨는 조각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지만 독학을 하며 40여 년간 위인(偉人)초상 조각에만 매달려왔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최 씨는 본래 1950년대 후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석공이셨던 조부의 피가 흘러 그런지는 몰라도 내겐 조각에 대한 재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1970년대 초 고령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아무것도 없는 교정이 너무 휑한 느낌이 들어 충무공 동상을 테라코타로 만들어 본 게 계기가 됐죠."

마침 학교를 방문했던 교육청 관계자가 충무공 동상을 보고 "좋은 아이디어다. 모든 학교에 보급하자"며 제안을 하게 됐다. 당시는 국민교육헌장이 막 나왔고 국가적으로도 충과 효를 강조했던 시기여서 충효사상의 상징으로 충무공 이외에 다른 역사적 위인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시대였다. 최 씨가 이렇게 위탁받아 제작한 충무공의 작품비는 월급의 6, 7배가 넘었다.

"그때 사표를 내고 대구로 와 공방을 차려 본격적인 위인초상 조각을 시작했어요.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어 처음엔 실패도 거듭했지만 전국을 다니며 동상을 견학했고 또 국가 지정 인물의 표준영정과 애국지사들의 사진을 참고해 위인초상 조각을 많이 해보았지요."

최 씨는 충무공에서부터 신사임당, 화랑 동상, 세종대왕 또는 학교 설립자 등 100여 학교가 넘는 곳에 각 학교 특성에 맞게 동상을 제작했다.

하지만 돈이 된다는 소문에 전문 업자들이 각급 학교에 저질의 동상을 납품하는 바람에 최 씨의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최 씨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위인초상 조각에 대한 미련만은 버릴 수 없었다.

"가끔 폐교된 학교를 찾아보면 초상만 홀로 남았거나 일부 허물어진 것을 보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그가 제작한 최고·최대 작품은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아래 있는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에 세운 '빨간 마후라' 유치곤 장군 동상이다. 높이가 4.6m에 이르고, 제작기간이 1년 넘게 걸렸다. 또 대구중앙도서관 앞 신사임당상,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내 이상화 초상도 최 씨의 작품이다. 위인초상 조각을 만드는 데는 청동재질은 5, 6개월, 석고재질은 1, 2개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입체도형이랄 수 있는 위인초상 조각엔 역사성이 있어야 해요. 그 인물이 평생 지향했던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 얼굴에 그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여든을 바라보는 최 씨는 올 10월 열리는 고령 대가야 축제에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지난해엔 서울 예술의 전당 내 가람미술관에서 '낙동강'을 주제로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 그는 큰딸과 막내아들이 운영하는 조형체험 황토공방에서 유치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 씨는 반세기 가까이 조각에 몰두해 왔지만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손재주에서 오히려 조각의 정수를 배운다고 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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