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짓말 딱 걸렸어! e-암행어사가 떴다

"암행어사 출두요!"

네티즌들이 암행어사가 됐다. 거짓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언제 어디든 나타나 정의의 칼을 휘두른다. 하지만 씁쓸한 측면도 있다.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인 영역보다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사적인 부분에서 구석구석 정보를 파헤쳐 진실 여부를 가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신력이 없거나 수사권한이 없는 네티즌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진실 공방에 뛰어들다 보니 진실 여부를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당사자와 네티즌들이 난타전을 벌인다. 미국 서부의 명문대인 스탠퍼드대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타블로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연예인들의 진실 공방도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피겨스타 김연아와 코치 브라이언 오셔의 결별 과정 진실 공방, 가수 MC몽의 병역기피 논란, 개그맨 신정환의 필리핀 원정도박, 한 케이블 방송의 4억 명품녀 사건, 가수 태진아·이루 부자와 이루의 전 여자친구 간 폭로전 등. 네티즌들은 이러한 사건들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뉴스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퍼나르며 온라인 법정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타블로의 진실 공방은 결국 검찰로

네티즌과 한 연예인의 진실 공방 난타전이 결국은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놀라울 따름이다. 온라인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타블로의 학력·국적 논란과 관련해 검찰에 진실을 밝혀달라고 수사를 의뢰했으며, 타블로 측은 집요한 특정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해명과 반박이 지겨울 정도로 이어졌다. 스탠퍼드대 성적표를 공개하면 '3년 6개월 만에 스탠퍼드대 학·석사 취득이 가능하냐', 학사 졸업장과 석사 학위증을 보여주면 '그 기간에 한국에서 학원 강사 활동을 했는데 언제 공부했느냐'는 식이다. 또 법적 대리인을 통해 캐나다 시민증과 대학 졸업 관련 증거를 공개하고 나서도, 또다시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한다. 타블로는 결국 정신적 충격 등을 이유로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경북대 심리학과 김지호 교수는 "익명의 네티즌들이 공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진실 공방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밝혀가는 과정을 즐기는 심리가 있다"며 "본인 역시 공정사회를 위해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느끼게 되면서 최근 들어 더 가열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보 접근 루트가 다양해지고 네티즌들이 팩트(fact)에 대해 확인해 주는 정보까지 올리면서 실제 논란에 기름을 붓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진실 왜곡 '우리가 밝힌다'

'약한 소시민들이 뭉쳐서 공인의 성격이 강한 지배층에 돌을 던지다.'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침몰 사건조차 믿지 않는다. '어뢰 추진체에 쓰여진 1번을 매직으로 썼다' '러시아에서 낸 보고서가 더 정확하다' 등 의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공방을 펼친다. 네티즌들은 피겨스타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셔 코치의 결별 원인을 두고도 판관 포청천처럼 '누구의 말이 맞다'며 심판을 내리고 여론을 몰아간다.

계명대 사회학과 임운택 교수는 최근 연이어 터져나오는 진실 공방의 사례를 보면서 이런 해석을 했다. "위정자의 위선이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응징하는 것을 통쾌하게 여기는 등 네티즌들이 불공정 사회에서 심정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힘없는 개인이 유명인을 상대로 면전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진실 공방을 익명의 힘을 빌려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이런 지나친 진실공방은 '집단적·관음증적 사회 병리'라는 지적도 했다. 네티즌이나 TV시청자들이 눈앞에서 진실이 왜곡되거나 호도되는 일을 볼 수 없어 진실에 최대한 빨리 접근하려 노력한다는 긍정적 측면 이면에 개인의 사적 영역에 가까운 사실들에 대한 진실 여부를 가려서 사회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으로 활발하게 댓글을 쓰며 각종 진실 공방에 참여하고 있다는 회사원 이철웅(28) 씨는 "법정 재판과 달리 하룻밤 사이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실 공방을 보면서 엄청난 재미와 스릴을 느낀다"며 "특히 연예인과 관련된 진실 공방에는 재미 삼아 참여해 내 의견도 얘기하고, 믿을 만한 정보가 제공될 때 주변에 알려주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진실공방 한 건이 드라마이자 단편 영화

네티즌들은 이제 진실 공방을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즐긴다. 뭔가 작은 팩트라도 밝혀지면 통쾌함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가수 태진아·이루 부자와 작사가이자 이루의 여자친구 최희진의 다툼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임에도 낙태 사실까지 진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공방을 벌였을 정도로 한 편의 아침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최근 한 케이블 방송의 4억 명품녀 역시 반전 드라마처럼 전 남편까지 등장해 반박에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단편 영화 같은 사례 2건이 펼쳐졌다. 직접 논의에 참가하기 쉽지 않은 사안인데도 네티즌들은 언론보도나 당사자들의 발표 등을 실시간으로 퍼나르고 댓글로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온라인을 달궈 여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 개그맨 신정환이 방송국에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해외 원정도박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뎅기열로 아파서 귀국이 늦어지고 있다'며 병원에서 찍은 사진까지 올려가며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언론에 관련 기사가 뜨면 삽시간에 곳곳에 퍼졌고, 언론의 현지 취재 결과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자 급기야 한 시민이 신정환을 검찰에 고발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2. 가수 MC몽이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이자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MC몽이 병역 면제 판정을 위해 생니 4개를 뽑고, 7급 공무원 응시원서를 제출하는 등 7년 동안 7차례나 입대를 연기했다"는 소식을 퍼나르며 MC몽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방송 출연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진실공방이 과연 통쾌하기만 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언론의 가십거리에 그칠 수 있는 사안까지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수사기관이나 법정으로 몰아가는 건 정상적인 사회 현상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적잖다. 특히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다소 과장되게 흥미 위주로 했던 발언조차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죽고 싶을 정도의 혹독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런 일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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