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당신밖에

모레 9월 22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핵가족화와 바쁜 일상사로 떨어져 살아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사회 공동체의 뿌리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은 환경이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면서 시작된다. 혼인의 첫째 목적은 사랑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경우 그 사랑을 유지하지 못해 이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자녀까지 출산하고, 또 이미 노년이 된 부부의 이혼 소식도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한다. 사랑은 진실하고 영원하며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인데도 한순간의 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약간의 배려도 하지 못해 갈라서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이다.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약하면 금방 시들어 버린다. 물과 양분을 줄기와 잎으로 올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이 사회의 뿌리라 한다면 부부는 그 뿌리 중의 뿌리이다. 이 뿌리가 시들해진다면 가정의 평화도 흔들린다.

'이 남자다 싶어서/ 나 이 남자 안에 깃들어 살/ 방 한 칸만 있으면 됐지 싶어서/ 당신 안에 아내 되어 살았는데/ 이십 년 전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나 당신 밖에 있네.' 김나영 시인의 '이사'란 시 구절의 일부분이다. 이 시에 나오는 '당신밖에' '당신 밖에'를 띄어 쓰는 것과 붙여 쓰는 것의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밖에'는 조사(助詞)로 오직 그것뿐임을 뜻하며 "홍길동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뭔가를 좀 나누고 싶은데,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봤더니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로 주로 체언 뒤에 붙여 쓴다. 바깥을 뜻하는 '밖'과 조사 '에'가 결합된 '밖에'는 띄어 써야 한다. '이외'는 어떤 범위나 한도의 밖이란 뜻으로 "관계자 이외 출입을 금합니다."에서와 같이 붙여 쓰지만 '이 밖' '저 밖'은 붙여 쓰면 안 된다.

'밖에'와 같이 '잘나다' '잘되다' 등을 익숙하게, 능란하게, 바르게, 좋게, 탈없이, 분명하게, 알맞게라는 뜻을 지닌 부사 '잘'로 착각하여 띄어쓰기를 하면 잘못이다. "사람은 마음을 잘 써야지." "우리도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잘 자랄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 등으로 쓰일 때 '잘'은 띄어 써야 한다. 반면 '잘나다' '잘되다' '잘빠지다' '잘살다' '잘생기다' '잘하다'는 하나의 단어로 띄어 쓰면 안 된다.

사랑은 고정된 틀이 아닌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다. 사랑은 거저 베푸는 것이며, 되받지 않아도 기뻐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것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한다.

이 같은 사랑이 시간이 흘러 '당신밖에' 없었던 것이 '당신 밖에'로 변하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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