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똑똑한 식탁 차리기

고추를 먹어야 할까, 먹지 말아야 할까? 한국인에게 고추는 단순히 채소가 아닌 식생활의 혁명을 가져온 소중한 존재이다. 고추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은 신진대사를 증진시키며, 암을 예방하고 전이를 억제하는 항암성분이라고 알고 있다. 지난해 10월 연세대 의대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에 감염된 위 상피세포에 캡사이신을 투여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캡사이신을 투여하는 양에 따라 염증 억제효과가 정비례했다'고 했다. 캡사이신은 통증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어 진통용 연고로도 사용된다.

이처럼 유익한 물질로 알려진 캡사이신이 피부암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올해 9월 건국대와 서울대 생명공학과 연구팀은 '캡사이신이 암 단백질을 활성화해 염증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피부암 등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물론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동물실험 결과이다. 경험상 양파 즙, 청양고추, 생마늘을 즐겨 먹는 위장은 내시경 소견상 위염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란스러운 영양학적 정보로 머리가 복잡해진 나머지, 우리는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버린다. 음식은 화학적으로 무척 복잡한 물질이다. 예를 들면 사과는 300가지 서로 다른 화합물로 구성돼 있다. 음식처럼 복잡한 것을 우리 몸처럼 복잡한 것에 넣었는데 결과를 손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의사는 식단 조절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음식으로 완치될 수 있는 병도 있다. 단순 비만이다.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의 사망률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암의 사망률도 높인다. 그러나 자료에 따르면 비만환자의 90% 이상이 식이요법을 통한 체중조절에 실패한다. 식습관을 변화시키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맛있는 건강'을 위한 새로운 식생활에 대한 도전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식습관이 결정되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다. 장기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과 음식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의 연구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언젠가 전문가의 의견일치를 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연구를 모아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고추 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현실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채소, 과일, 통곡물, 저지방 유제품을 기본으로 해서 식사를 하되 과식은 피하라는 것이다. 고추 또한 예전처럼 즐겨 먹되, 너무 매운 맛은 피하는 게 좋다.

*암예방 식생활카드가 'http://kr.blog.yahoo.com/drazumma/MYBLOG/yblog.html?pc=5'에 있습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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