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장'의 김병일 상임고문(59)은 전형적인 '소년 출세' 공직자로 꼽힌다. 만 21살의 나이에 고시에 합격해 고위공직자의 길로 들어선 이래 승승장구, 49세에 차관급인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의 자리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첫 조각 때는 물론이고 장관급 인사 때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공정거래위 부위원장까지 지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장을 마지막 공직으로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다가 봉사하는 자리로 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죠." 공직만이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아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고등학교 교장이라고 했다.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안산의 한 디지털고교 교장으로 가서 열심히 인성교육에 몰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교육을 받고 있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왔죠. 기회가 된다면 인성을 함양하는 진짜 교육을 해보고 싶습니다."
고향인 의성 옥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구 계성중, 계성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늘 운이 좋은 편이기도 했다. 아무리 수재라도 한두 번씩은 하는 그 흔한 재수 한 번 하지 않고 중·고·대학 시험에 단번에 붙었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고시에도 거뜬히 합격했다고도 했다.
한자로도 똑같은 동명이인인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장관(현 국학연구원장)과의 인연도 고시 준비 때 시작됐다. 1971년 제 10회 행정고시 1차 시험에 '김병일'이라는 이름의 합격자가 2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김 전 장관이었던 것. 김 전 장관은 최종합격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그는 2차 시험을 포기했다.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난리가 났다.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동네사람들이 합격한 줄로만 알고 잔치까지 열어 고시 합격을 축하했던 것.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방학이 돼서 고향에 내려가 축하 인사를 받은 그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이를 악물고 고시 공부에 몰두, 다음해 행시(11회)에 합격했다. 그 후 김 전 장관과는 재정경제원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인연을 이어갔고 2000년 8월 차관급 인사에서 각각 공정거래위 부위원장과 기획예산처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국무회의 등에서 수시로 만났다.
그가 '공정 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사무관으로 첫 근무하게 된 곳은 원호처였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관료를 꿈꾸던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니었다. 이후 해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에 '꿈에도 그리던'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가게 됐지만 다시 올림픽조직위로 파견됐다. "당시 88올림픽 방영권 협상 담당 과장으로 일하면서 김범일 대구시장과 문동후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사무총장, 정강정 전 총리비서실장 등 지역 출신 인사들과 교류하게 됐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기획원으로 복귀했는데 이번에는 주일대사관 경제참사관으로 가게 됐고, 기획원이 재무부와 통합되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 기획원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를 공정위로 부른 사람은 당시 김인호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정책국장 자리를 제의하면서 러브콜을 했던 것. "당시에도 향후 공정거래위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정위에서 일하는 것도 보람있겠다고 생각하고 재경원 복귀를 포기하고 공정위 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공정위에서 정책국장·경쟁국장·사무처장 등 요직을 모두 거치고 부위원장에 올랐다.
그가 로펌인 '김&장' 상임고문으로 가게 된 것 역시 '공정 맨'의 연장선상이었다. 차관직을 그만 둔 다음날부터 로펌에서 전화가 왔지만 공직을 그만 둔 고위공직자들이 지방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브레인 풀'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로펌의 역할은 공정위와는 반대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설득에 생각을 바꿨다. 이왕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로펌에서 일하기로 하고 '김&장'을 선택한 것이 8년이나 지났다.
그는 '로펌의 주역은 변호사'라고 전제하면서도 "공정위가 실제로 어떻게 접근하는 지 프로세스를 잘 모를 수 있다"며 로펌에서의 고위공직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사 때마다 '업무추진력이 뛰어나면서도 친화력이 강하고 두주불사형'이란 평을 듣던 그는 권도엽 국토해양부 차관과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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