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은 기록경기다. 트랙이나 도로 경기에선 기록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투척·도약 등 필드 경기에선 기록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경기에 사용되는 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종목마다 기구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정확한 경기 진행과 환경의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첨단 장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육상 경기에 사용되는 용 기구는 1만2천여 종에 달하는데, 크게 고정식과 이동식으로 나눌 수 있다. 고정식엔 트랙과 필드를 구분하는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경계석인 트랙 커빙, 각종 투척 경기의 서클(정해진 원형 구역 표시를 위해 땅에 설치하는 쇠), 3,000m 장애물 경기의 물웅덩이 및 장애물 등이 있다. 이동식 용 기구는 다시 트랙경기 용 기구, 도약·투척 등 필드경기 용 기구, 측정용 용 기구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수 옷 바구니, 심판 접이식 의자, 매트부터 고가의 전자 계측기까지 고정식 외의 모든 장비가 포함된다. 육상 경기에 사용되는 대표적이고 이색적인 용 기구의 진화 과정과 뒷얘기, 보관 방법, 경기장 구조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스타팅 블록
트랙경기를 대표하는 용 기구 중 하나다. 제1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의 톰 버크가 100m, 400m에서 한쪽 무릎을 땅에 대는 자세인 크라우칭 스타트를 처음 선보여 2관왕을 차지한 뒤 크라우칭 스타트가 급속도로 전파됐고, 이후 이 자세에 맞는 형태의 기구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경기장마다 작은 삽을 비치해 땅을 판 뒤 발을 고정해 현재의 스타팅 블록과 같은 효과를 냈는데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현재와 비슷한 스타팅 블록이 등장해 공식 용 기구로 사용됐다.
◆빗물 제거 롤러
비가 올 때 트랙에 고인 빗물을 제거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용 기구다. 4, 5년 전 유럽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해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1.2m 정도 크기의 롤러를 굴려 트랙에 고여 있는 빗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원리다. 트랙 특성상 기울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비가 오면 빗물이 좀체 빠지지 않아 선수들이 경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고안됐다. 예전엔 진행요원들이 투입돼 수건으로 일일이 물기를 닦아냈다. 도움닫기가 필요한 멀리뛰기나 높이뛰기 등 도약 경기와 창던지기 등 투척 경기 서클 지역의 미끄럼 방지를 위해 사용된다.
◆장대높이뛰기 장대(Pole)
경기 도구의 재질이 변함에 따라 기록이 향상된 대표적인 종목 중 하나가 장대높이뛰기다. 장대는 1890년대까진 일반적인 나무를 사용했지만 1906년 일본 선수가 대나무를 사용하면서 더 좋은 기록을 냈다. 1940년대엔 탄력은 좀 떨어지지만 가벼운 금속재 장대가 널리 쓰였고, 1960년 이후 현재까지는 파이버 글라스 재질로 된 장대가 사용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장대 재질의 변화로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 기록이 3m30이었지만 현재 세계기록은 6m14로 배 가까이 늘었다. 장대높이뛰기 장대의 경우 특이한 장치가 없는 한 길이나 무게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창
창던지기 종목에서 사용되는 창의 무게와 길이는 남자 800g, 2.2m, 여자 600g, 2m로 정해져 있다. 창은 창이 떨어질 때 지면에 꽂히는 창의 끝 부분인 창촉과 창 자루, 창을 잡을 수 있도록 끈으로 감은 손잡이 부분 등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창의 무게 중심 위치에 따라 기록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 무게 중심이 뒤로 갈수록 비행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관중 안전 등의 이유로 창 무게를 앞쪽으로 조정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작성된 세계 기록은 106m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창의 중심을 앞쪽으로 당기면서 기록이 90m 후반으로 줄었다.
◆특이한 투척 용 기구 사용 규정
창, 장대, 원반, 포환 등 투척경기에 사용되는 기구는 시합 전 반드시 공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창의 경우 무게 중심에 따라 기록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다. 선수 개인별로 자신이 사용할 투척 장비를 가져오면 조직위에서 일괄적으로 받아 보관하고 연습이나 경기 때 꺼내 장대 거치대에 비치한다. 재밌는 것은 아무리 개인 소유 장비라 하더라도 일단 조직위에 넘긴 이상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장비는 공용이 되고 다른 선수가 사용 의사를 밝히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 맡길 때 다른 선수가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전제 조건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우트(Moat)
종합경기장의 경우 운동장과 관중석 사이 둘레에 지하까지 깊이 파인 공간이 있다. 이를 모우트(Moat·해자)라고 한다. 육상대회에선 주로 선수, 임원, 심판들이 이동할 때 사용되는데 경기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장에 나오고 들어갈 때 모우트를 이용한다. 관중의 경기장 난입 방지 및 안전 확보를 막기 위한 시설이다. 최근엔 시상식에 사용되는 국기도 모우트에서 모두 정리한 뒤 올린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김만호 경기운영1부장은 "육상의 오랜 역사만큼 육상 경기에 사용되는 각종 기구도 진화를 거듭하면서 다양해지고 첨단화되고 있다"며 "내년 대구 대회 때 첫 선을 보이는 용 기구는 없지만 가장 발전한 다양한 용 기구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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