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친정 부모님과 시댁 나라인 한국에서 함께 추석 명절을 보내 정말 기뻐요. 집에서 막내인 제가 한국으로 시집왔는데 막내가 부모를 모셔야 하는 베트남 풍속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너무 감사 드려요."
경북 예천 용문면으로 시집온 지 2년째인 베트남 새댁 누엔 티탄 닙(23) 씨는 올 추석 명절이 말 그대로 풍성하고 즐거웠다. 베트남에서 모셔온 친정 부모님과 함께 맞는 명절이어서 더욱 뜻깊은 한가위가 된 것이다.
추석인 22일 누엔 티탄 닙 씨는 이른 아침부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남편 안병환(45) 씨와 아들 승기(17개월) 군, 시어머니 김옥녀(76) 씨 등 가족들과 함께 성묘갈 채비에 분주했다.
그녀는 올 추석을 베트남에서 온 친정 아버지 누엔 반 니아(51), 어머니 누엔 티 난(51) 씨와 시댁에서 함께 보냈다. 베트남에도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중추절 명절이 있다. 떡과 전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풍년 농사를 기뻐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 예천읍내 떡집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닙 씨에게 한국 떡 만들기는 이제 한국인 며느리 못잖은 쉬운 일이 됐다. 절편·기지떡·꿀떡 등 한국 전통떡 이름도 줄줄 꿰고 있는 닙 씨는 결혼 2년 만에 어엿한 한국 며느리가 다 됐다.
시어머니와 친정 부모가 함께 추석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정을 나누는 모습에 닙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2008년 2월 예천으로 시집왔을 때만 해도 한때 가출을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한국 생활과 시집살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주교 안동교구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도움으로 조금씩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남편과 시어머니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외국인 아내와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닙 씨는 "이제는 남편보다 시어머니가 더 좋아졌어요. 시어머니와 얘기도 많이 나누고 너무너무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 같은 그녀의 모습에 남편 안 씨도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 씨는 베트남에서 장인·장모를 모셔오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 베트남으로 초청장을 보내고 장인·장모를 모셔왔다. 집 근처 빈집을 수리해 장인·장모가 기거할 수 있도록 했다. 며칠 동안 관광을 시켜드리면서 오랫동안 모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농촌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농촌에서 이웃들의 농사일 돕기에 나서도록 했다.
남편 안 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장인·장모님에게 생활비를 보태 드려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내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장인과 장모님은 한국에서 일해 번 돈으로 고국에 돌아가면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일자리 구해주기'를 생각해냈다"고 했다.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주홍매(37) 팀장은 "친정 부모님을 초청해 곁에서 함께 사는 것은 외국인 며느리들의 한국 생활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며 "올해부터는 한 번 초청으로 1년간 머무를 수 있어져 닙 씨의 사례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천·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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