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원구(33) 씨는 여름휴가로 필리핀을 다녀오는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해외 요금 폭탄' 우려에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떠난 게 화근. 최 씨는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이메일과 트위터·페이스북에 남겨진 메시지를 확인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런 최 씨에게 스마트폰은 단 1초라도 없어서는 안 될 자신의 몸 일부나 마찬가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의 아름다운 풍광도, 맛있는 음식도 스마트폰을 잊게 하진 못했다"고 했다.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이 바뀌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이메일과 뉴스를 접하고, 출근 후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한다. 주목할 점은 인터넷 접속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익스플로러와 같은 웹브라우저를 '클릭'하기보다 '앱'이라는 모바일의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터치'하는 시대가 온 것.
이와 관련, 미국의 대표적인 IT 전문지가 최근 '웹이 죽었다'는 도발적인 기사를 실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웹'의 시대가 가고 '앱'의 시대가 온 것일까?
◆웹은 죽었다?
미국의 IT 전문지인 와이어드(Wired)는 최근 특집기사를 싣고 "월드와이드웹(WWW)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와이어드는 웹이 생겨난 초창기에 웹 기반의 IT 전문지로 창간돼 10여 년을 웹과 함께 성장했다. 그랬던 와이어드가 왜 갑자기 '웹'의 사망진단을 내린 것일까?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인터넷 중심이 웹에서 앱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 같은 신문도 'www'로 시작하는 주소를 치고 들어가기보다 해당 신문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에서 일반 웹을 통한 인터넷보다는 다양하고 유용한 앱을 더 자주 쓰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나 인터넷 전화·인스턴트메신저(IM)·라디오·게임·영화 등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서비스 트래픽은 웹이 아닌 앱을 통하고 있다."
와이어드는 2000년 이후 전체 인터넷 트래픽에서 웹의 점유율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사실을 웹 사망론의 근거로 들었다. 인터넷 트래픽 조사기관인 'CAIDA'에 따르면 웹은 2000년 당시만 해도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해를 정점으로 줄어들더니 2010년에는 웹 트래픽의 비율은 23%로 줄었다. 대신 웹의 자리는 P2P(개인 대 개인의 파일 공유)나 비디오 트래픽의 비중이 늘고 있다. PC보다 모바일 장치를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가 폭발적으로 보급된 것도 PC의 넓은 화면에 맞는 웹의 쇠퇴를 가져온 요인으로 꼽는다. 소비자들은 웹브라우저의 주소창에 'www'로 시작하는 주소를 입력하고 검색창에 '클릭'해야 하는 '웹'보다 버튼 하나를 '터치'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앱'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또 언론사와 영상·음악 콘텐츠 기업들도 유료화가 어려운 웹보다 '앱 스토어'를 통해 손쉽게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앤더슨 편집장은 "웹은 과거 철도·전기·전화 등 역사상의 신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폭발적인 성장기를 지나 정체 또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며 "웹이 죽더라도 인터넷의 번영은 앱 등 새로운 서비스에 의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IT 전문가들은 와이어드의 '웹 사망론'에 '아직은?'이라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웹 브라우저 붐을 타고 급상승하던 웹의 트래픽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해 2010년 23%를 나타내는 등 분명 비중은 줄었지만 절대적인 양은 오히려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물 담는 그릇이 '바가지'에서 '고무 대야'로 커진 것은 못 보고 있다는 얘기. 한 전문가는 "점유율 면에서 P2P와 비디오 트래픽이 웹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얘기지 웹의 절대적 수치는 여전히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파워 블로거 '보잉보잉'은 이렇게 와이어드의 주장에 반박했다. "웹의 이용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제대로 짚었지만, 그 절대적 이용량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또 비디오 이용량 증대가 IT와 미디어, 문화산업을 융합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바로 봤지만, 플랫폼 구축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기반한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연결성을 부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도 '웹이 죽었다'에 대한 와이어드의 주장에 대해 "웹은 아직 죽지 않았다. 특히 웹과 인터넷은 그동안 서로 깊게 융합돼 이제는 둘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반박했다.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웹의 죽음은 '아직'이라는 주장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